에펠탑에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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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에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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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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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 타워 전망대에서 본 에펠탑의 불빛. 조성관 작가 제공
에펠탑 아래에 있는 구스타브 에펠 흉상. 조성관 작가 제공
에펠탑 전경. 조성관 작가 제공

프랑스가 지난 1월 31일 전역에 봉쇄령을 발동했다. 모든 국경이 폐쇄됐고, 모든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았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만 문을 열었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지 않자 내린 초강수다.

프랑스인들이 “My body, My choice”(나의 몸은, 나의 선택)를 외치며 지하철 같은 곳에서 정부의 마스크 쓰기 권고를 거부한 결과다. 지난해 5월 말과 10월 말 전국 봉쇄조치 이후 세 번째다.

코로나로 사실상 해외 여행길이 막혀버린 지 1년.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한 해 동안 자동차 판매와 전자제품 판매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온라인 강의로 늘어난 노트북과 컴퓨터 수요를 제외하고도 그렇다. 여행 욕구를 해소할 수 없게 되자 소비자들이 자동차와 전자제품 구입으로 소비 대상을 바꾼, 보상 심리의 결과라는 해석도 나왔다.

인기 높은 해외 여행지에는 대표적 랜드마크가 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가보고 싶은 랜드마크’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단연 에펠탑이다. 스케일과 감동에서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인은 국적과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에펠탑을 보고 싶어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에펠탑에는 언제나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로 들떴다. 파리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에펠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렇다 보니 에펠탑으로 가는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로카데로 광장부터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그 트로카데로 광장과 에펠탑에 지금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에펠탑은 얼마나 외로울까. 에펠탑의 처량한 불빛을 보면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태어난 게 1889년이니, 132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지. 하긴,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군들 알았겠어.

프랑스혁명 100년을 기념해 열린 파리만국박람회 주탑(主塔)으로 네가 세워질 때부터 참 별의별 ‘웃픈’ 일들이 많았지. 모파상을 비롯한 사회 명사들이 참여한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얼마나 모진 험담을 퍼부었는지. 과학기술의 ‘ㄱ’자도 모르는 자들이 무식한 궤변으로 대중을 선동할 때도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구스타브 에펠은 정말 대단한 엔지니어야. 에펠은 320m 꼭대기에 부는 바람의 힘까지 정밀하게 계산해 너를 만들었으니까 말이야. 한마디로 과학과 수학의 승리였어. 너는 원래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조건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파리 시민들이 네게 열광하면서, 단명(短命)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되었지.

찾는 이 없는 너를 보니 지난 시간이 생각나네. 그동안 너는 정말 곡절이 많았지. 자칫 폭파당할 뻔도 했으니까. 산다는 것은 견뎌내는 것이라는 말은 너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어. 너는 유럽 대륙을 피로 물들인 두 번의 세계대전에도 무사히 살아남았지.

정말 아슬아슬했던 순간은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한 2차세계대전이었어. 나치 독일의 전차 부대가 동부전선 마지노 방어선을 우회해 벨기에를 단숨에 치고 파리로 진격할 때 프랑스는 항복을 선언했어. 파리를 너무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전쟁인데, 파리가 폭격을 받아 쑥대밭이 되는 걸 원치 않았지. 만일, 그때 결사 항전을 했더라면 너는 분명 크게 다쳤을 거야.

너는 프랑스인의 자존심이었고 정신이었어. 파리가 함락되었을 때 히틀러가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은 바로 에펠탑이었지. 히틀러는 제3제국 영도자로 에펠탑 꼭대기 층에 올라가 마치 나폴레옹처럼 파리를 굽어보고 싶어했어. 누군들 안그러겠어? 히틀러가 지도부를 대동하고 에펠탑에 올라가려 하자 엘리베이터 기술자가 꾀를 냈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습니다. 전시 상황이라 부속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일부러 부속품을 빼 고장을 낸 거지. 전시라는데 뭐라 하겠어. 나치가 전쟁을 일으켰는데. 2층까지의 높이만 58m. 지엄하신 총통 각하께서 어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계단으로 올라가겠어. 포기할 수밖에.

총통 각하는 명령했어. 320m 꼭대기에 초대형 하켄크로이츠를 매달아라. 파리 시내 전체에서 나치 깃발이 다 보이게. 제3제국의 파리 점령을 만천하에 선언하라. 졸병은 그 무거운 나치 깃발을 들고 320m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어. 한번 상상을 해봐. 입에서 단내가 나고 죽을 맛이었을 거야.

2층인 58m까지 올라가는 데도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은 쉬어야 하는데. 그 나치 병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고 또 안타까워. 결국 히틀러는 파리를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에펠탑에 올라가지는 못했어. 프랑스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는 실패한 거지. 지엄하신 총통 각하는 너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어.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말이야.

너는 나치 독일로 인해 지상에서 사라질뻔한 순간도 있었지. 너도 기억할 거야.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한 2개월여 뒤 마침내 파리를 해방시켰어. 그때 히틀러는 파리에서 퇴각하는 나치 사령관에게 명령했어. 에펠탑을 폭파해라. 하지만 나치 사령관은 그 명령을 뭉개버렸지. 에펠탑은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폭파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그 나치 사령관이 어떤 나라의 영혼 없는 장관 같았으면 어쩔 뻔했어.

너를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루트가 있지. 어떤 교통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보행에 불편을 겪는 사람이라면 택시를 타고 탑 바로 아래까지 가면 되겠지. 물론 코앞까지 가는 버스, 지하철, 유람선도 있지만 그건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너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너를 가장 극적으로 만나는 방법은 지하철 6·9호선이 교차하는 트로가데로 역에서 내리는 것이지. 플랫폼에 내리면 ‘투르 에펠’(Tour Eiffel)이라는 안내판이 보이니 그길로 따라가면 돼. 지상으로 올라서면 나폴레옹 시대에 지어진 궁전이 보이지. 이 궁전을 끼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네가 짠~하고 나타나지. 마치 오페라극장의 빨간색 커튼이 양쪽으로 차르르 열리면서 주인공이 걸어 나오는 것처럼. 광장 너머, 저만치 너는 서 있지.

트로카데로 광장! 에펠탑에 올라가지 못해 잔뜩 심사가 꼬였던 히틀러가 서성거렸던 곳이지. 트로카데로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사진에 많이 등장한 광장이야. 코코 샤넬과 이브 생 로랑과 같은 패션 디자이너의 모델들이 런웨이(runway)로 삼았던 곳이고, 밴드 ‘핑크 마티니’의 앨범 ‘심파티크’에서 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탄 곳이었지. 이곳에서 너를 배경으로 무엇이든 하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너에게로 이르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의 연속이지. 하지만 내리막길을 따라 네게 다가갈수록 감동은 크레셴도가 되어가지.

센강 다리를 건너 네 아래 서면 누구나 흥분하고 들뜨게 되지. 1889년, 그 옛날에 철골 골조만으로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세웠을까. 5년간 공사를 하며 안전사고로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또 어떻고. 관광객들이 달뜬 나머지 에펠 상(像)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네가 서운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너무 좋아서 그런걸. 너그럽게 넘어가 줘.

힘들게 파리까지 와서 너를 오르지 못하는 것은 에펠탑을 보기만 하고 느끼지는 못한 것이지. 그런데 너를 보기만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퐁피두 센터나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모두 너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어. 서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건축설계의 원조도 사실은 에펠탑 너였지. 지난 백 년 동안 문학, 음악, 미술, 사진, 건축, 공예, 패션, 디자인에 네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마 너도 잘은 모를 거야. 우리는 그걸 ‘에펠 스타일’이라 부르고 있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도 네가 나오고, 뮤지컬 ‘맘마 미아’에도 네가 등장하잖아. 다 일일이 언급할 수도 없어.

밤이 되면 너는 더 매혹적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출렁이는 센강 유람선에서 너를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와. 에디트 피아프가 파리의 목소리라면 너는 파리의 불빛이지. 너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33시간 동안 졸음을 참으며 대서양을 건넌 남자 찰스 린드버그가 있잖아.

에펠탑아, 너무 슬퍼하지 마! 사람들이 비록 너에게 가지는 못하지만 너를 잊은 건 아니야. 너는 이미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빛이야. 너는 지금 아름다운 여인의 귓불에서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으니까.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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