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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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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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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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스티브 바이의 ‘Passion and Warfare’를 들으며



For the Love of God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고가도로를 끝에서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달린다. 차 안에는 스티브 바이의 ‘For the Love of God’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를 앞지르던 자동차들이 하나둘 출구를 향해 아래로, 각자의 목적지로 빠져나간다. 이제 도로 위에는 나밖에 없다. 태양은 대지의 빛을 빨아들이고 있다. 도시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고, 나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잠시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새 먹빛으로 변해버린 무채색 구름은 밤을 불러들이는 주술을 펼치는 듯 몽환적이다. 도로는 끝 간 데 없이 뻗어있고, 바다 내음이 서서히 밀려온다.

저편으로 보이는 넓은 항구에는 대형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크레인은 아주 천천히 육중한 컨테이너를 들어 올린다. 각지고 차가운 컨테이너가 마치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상에 빠진다. 나는 고철 속에 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시선을 향한 채, 엉덩이를 의자에 파묻은 채. 고철이 날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으로부터? 막연한 질문으로부터 달아나는 속도로 달린다. 그것은 어쩌면 스티브 바이의 연주와도 같은 정처 없음, 맥락 없음, 두려울 정도의 몰입감, 작은 죽음을 닮았다. 잠시 잊고 있던 저 세계로의 열망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처럼 스티브 바이는 기타는 울고 있다.



기타의 눈물

제프 벡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 조지 해리슨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그리고 스티브 바이의 ‘The crying machine’은 모두 기타의 울음소리가 담긴 작품이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의 조각상에 사로잡혀 사랑에 빠져버린 피그말리온일 수도 있고, 자신에게 빠져버린 나르키소스일 수 있다. 신화적 원형이 음악적으로 재현된 예술이라 해도 좋다. 그렇다면 나의 기타는 어떠한가. 내가 만들어내는 음표와 쉼표와 도돌이표는 어떤가. 그것들은 단순한 기호일 뿐인가, 소리를 꿈꾸는 음표의 열망인가, 어쩌면 그것은 소리 그 자체. 나는 음표가 곧 소리라고 믿는다. 비록 내게만 들린다고 할지라도.

나의 기타는 가방 안에 잠들어 있다. 앰프는 전기를 맛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언젠가 그것은 다시 하나로 결합하여 소리를 품어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 것만 같다. 그것은 울음이라는 것을.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존재의 최초는 바로 그 울음이라는 것을.



The Crying Machine

이제 차 안에서는 ‘The crying machine’이 연주되고 있다. 기타에 감정이 있는가? (인간인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다. 만약 나처럼 기타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기계를 대신하여 슬퍼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울음의 가능성을 열어둔 당신이.

나는 영영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 도로의 끝을 응시한 채 스티브 바이의 품에 안긴 기타를 떠올린다. 온몸으로 연주하는 그의 몸짓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매혹적인 멜로디, 태핑, 아밍, 슬라이드, 하모닉스…. 한때 그의 아이바네즈 ‘Jem’을 흠모하여 소장하기도 했던 나는 여전히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전자)기타가 스스로 운다는 사실을 믿고야 만다. 그건 악기인가, 음악인가, 아니 그것은 눈물을 흘리는 존재, 그러니 당신에게 따뜻한 손이 있다면 한번 닦아주시길. 함께 울어주는 기타리스트들처럼 말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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