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투기,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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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투기,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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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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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년 간 한 광역 지자체의 직에 종사한 적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이지만 공직사회의 명암을 살펴보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장 출근한 첫 주부터 그랬다. 소속 공직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토지 개발과 관련하여 매수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들 애써 외면하며 조심하는 눈치였지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한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한다.

공직자들 중 특히 지역의 토지개발과 관련된 정보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경우, 항상 이런 상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내 경우만 해도 그랬다. 개발제한구역 해제나 용도지역의 변경 등, ‘알짜’ 일 수 있는 정보들을 적어도 일반인들 보다는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투기를 위해 이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속 깊이 양심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운 사회, 그것이 바로 개발과 관련된 공직사회였다.

지금 시점에서 투기라 할 수 있는 행위는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다. ‘민간형 투기’와 ‘공직형 투기’가 그것이다. 민간형 투기는 주로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중심으로 나타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규제를 피해 틈새지역을 돌아다니며 아파트 시세차익을 노린다고 한다. 당장 작년의 경우만 해도, 규제 대상이 아닌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을 부풀려 놓고는 마지막에 지역민에게 넘기고 나가는 세력이 있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들의 투기가 불법은 아니다. 그래서 대처가 쉽지 않다. 대출규제나 거래허가구역과 같은 정책을 동원한다지만, 이런 경우 엄한 실수요자까지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공직형 투기는 알다시피, 개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직자들이 토지를 사들여 차익을 노리는 행태이다. 일견, 개발 정보를 다루는 공직자들만 철저히 관리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우선, 투기의 타이밍이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 이들은 정보에 의해 토지를 매입하는 게 아니라, 토지를 매입한 후 정보를 만드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토지를 사 놓은 후 그에 대한 개발계획이 세워지도록 수를 꾸민다는 것이다. 이들이 토지를 사 놓은 곳에 우연히(?) 신시가지나 도로가 개설되는 식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다가 지인들을 이용하는 차명 투기는 기본이다. 차명도 가족이나 친척을 이용하는 수준이라면 애교에 불과하다. 형식상 별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투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공직자의 실명은 숨겨주는 것은 물론, 상호 협력과 감시 하에 이익을 공평히(?)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빠르고도 은밀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사후에 아무리 엄밀히 조사를 한들 그 흔적을 찾아내기가 쉬울 리 없다. 정부부처와 정치권은 물론 각종 공사, 지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투기행태를 다 잡아내자면 당장 우리나라의 검찰, 경찰력이 다 달려들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이쯤에서 땅 한 평 없는 일반인들은 당연히 박탈감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뛴다 한들, 그 위에 나는 놈들이 있어 일반인의 생각과 타이밍을 초월해서 투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토지수용 과정에서 이득을 보기 위한 ‘묘목 심기’, ‘쪼개기’와 같은 각종 편법들이 다 동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예 딴 세상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공직자들의 청렴도를 올리고 그들의 도덕률에 의존하는 것으로 가능할까? 과거 싱가폴의 경우처럼 공직의 타락에는 심지어 사형까지 이르는 강력한 처벌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토지를 국유화해서 원천적으로 토지 차익을 없애야 하는 것일까? 더 답답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신통한 정답이 될 수는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어차피 투기의 시대도 저물고 있기는 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3기 신도시도 수도권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토지를 짜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방의 경우 용도지역을 풀거나 신개발을 허용한다 한들, 이제는 이를 채울 인구가 부족한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세차익, 불노소득을 노리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투기는 이제 원천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롭고 진취적인 의미에서의 투기(?)는 오히려 나타났으면 한다. 누가 가져다 줄 가치를 기다리는 투기가 아닌, 토지에 스스로의 창의력과 혁신을 더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런 투기 말이다. 그런 투기가 가능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공직자와 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임무일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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