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 ‘모범주주’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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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헤지펀드 ‘모범주주’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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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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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이 통상 회사 경영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유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소수주주가 시간과 비용, 노력을 들여 경영개선에 기여하더라도 그로 인한 주가 상승은 얼마되지 않는다. 100주 가지고 있는데 주가가 만원 올랐다면 100만 원의 효익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비용이 2천만 원 든다면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경영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면 나 아닌 다른 누가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임승차 문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주주들은 순한 양과 같고 그 틈에서 경영진의 전횡도 가능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소수주주다.

헤지펀드는 경영진의 회사경영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주주로서 해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기들의 말이 먹히지 않으면 기관투자자 등 다른 주주들을 등에 업고 다양한 방식으로 완력을 행사한다. 최종 병기는 이사회 진출이다. 드물지 않게 이사 전원교체(Long Slates)를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한다. 적대적 M&A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는 일반적으로 경영진의 적군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헤지펀드가 경영진의 파트너가 될 뿐 아니라 외부의 경영진 공격에서 경영진을 보호해 주는 역할까지 할 때도 있다. 헤지펀드가 그런 역할을 할 때 밸리데이션자본(Validation Capital)이라고 불리게 된다. 종래 사모펀드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이제 헤지펀드도 경영진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차이는 사모펀드가 애초부터 우호적인 것과 달리 헤지펀드는 공격성은 유지한다는 점이다.

2014년에 트라이언(Trian)은 벵크오브뉴욕멜론 지분 2.5%를 취득하고 행동주의를 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트라이언은 기왕에 경영진이 추진하던 경영진 보수 조정, IT 투자 확대, 비용절감 등을 압박하면서도 경영진과 건설적인 관계를 설정했다. 목표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 경영진은 경계심을 품고 있다가 결국에는 트라이언을 이사회에 초빙하고 긴밀한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몇 달 후 다른 헤지펀드인 마르카토(Marcato)가 1.6%를 취득해 경영진 교체와 은행 인력의 구조조정을 들고나왔다. 일부 다른 주주들도 이에 가세했다. 그러나 트라이언은 이미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가세하기는 커녕 경영진을 옹호했고 상황은 더 악화되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 트라이언이 경영진을 위해 일종의 백기사 역할을 한 것이다. 대신 기왕에 진행하던 경영개선을 가속했다. 그 결과 그 후 5년 6개월 동안 은행의 주가는 31달러대에서 55달러대로 상승했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우호적 헤지펀드와 경영진의 유착이 발생해서 또 다른 형태의 부패 원인이 되지 않는가다. 소수주주인 헤지펀드가 경영진 지원의 대가로 특혜나 보상, 즉 1970~80년대에 유행했던 그린메일(Greenmail)을 받는 문제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대 록 교수팀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파트너 헤지펀드의 부패 징후는 없다고 한다. 2015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행동주의 사례 279건을 분석한 결과다. 다만 기업공시를 포함한 공개된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거래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유수의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행동주의 대상 회사 경영진의 유착이 발생하기 어려운 것은 헤지펀드들의 평판위험 때문일 것이다. 헤지펀드는 단독으로는 행동주의를 성공시킬 수 없고 스튜어드십코드 준수의무 하에 있는 기관투자자 등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데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경우 시장에서 존속하기 어렵다. 사실상 밸리데이션자본 역할을 하는 워렌 버핏이 경영진과 유착해서 개별적인 이익을 챙기지 않는 이치와 같다. 더구나 지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자본시장의 새 이념인 시대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모범주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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