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부터 세시풍속·토속민요와 함께 했지요”
  • 경북도민일보
“다섯 살 때부터 세시풍속·토속민요와 함께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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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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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 김명희, 채록자 : 김나연
소리하던 할머니와 부모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토속민요·세시풍속 익혀
무수히 많은 어사형· 짧은 가사 엮어
 정선아라리처럼 ‘긴소리’ 만들고파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토속민요를 익히게 됐다는 김명희씨. 그는 “지역 토속민요 가사가 짧아 안타깝다. 긴소리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김명희님 장구

△고향 장기에서의 어린시절

지신밟기! 별신굿! 세시풍속과 함께 다섯 살 때부터

제가 다섯 살 때부터 기억인데요. 제 고향이 포항시 장기고요. 집집마다 가가호호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잖아요. 지신밝기를 하면 제가 다섯 살, 그보다 더 어릴 때도 지신밟기 시배들 사이에 따라다니면서 춤을 덩실덩실 추고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동해안 별신굿. 그때는 굿을 며칠씩 했거든요. 그 연행 과정 중에 창호지 있지요. 한지를 가지고 이렇게 붙여서 사람이 이렇게 해가지고. 옛날에 공옥진 선생님 동물 춤추듯이. 범을 꼬리까지 만들어가지고, 포수가 총을 들고 범을 잡으러 다니는 그런 연극이 있었는데. 그런데 어린 내가 어른들 사이에 이렇게 끼어 있으니까 할머니가 우리 엄마보고 막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애를 빨리 치워라!’ 이거지요. 그런 거를 애들이 보면 안 된다. 범 잡고 하는 거요. 그리고 산모가 있고 산파가 있고 그런 연극과정이던가, 제가 다섯 살 때부터 그런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우리 세시풍속 있잖아요.

△포항 토속민요 즐긴 할머니

어릴 때 우리 집 들어가는 데 우물이 하나 있었거든요. 우물 하나 있는데서 할머니가 양철 다라이를 엎어놓고 장구 대신으로요. 매일 에야누야누야, 쾌지나칭칭나네, 이걸 많이 했어요.



청청하늘에 잔별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시내 갱빈에 자갈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이렇게 시작을 하면은 가사에는 온 동네 누구 흉도 들어 있고, 해학도 들어있고요. 그러면 이거도 하나의 풍악이라고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길 어귀에 있으니까. 웅굴다물(우물)에. 길옆에 있으니까. 우물이 있는 그 옆에 모여 앉아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 날이 저물도록 머물다 가는 사람. 그러면 하루 종일 그러고 있는 거예요. 물론 일할 때는 같이 어울려 하지만요. 놀 때는 그렇게 놀고요. 그래서 그때 할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할머니는 포항 토속민요를 한 거 같고요. 아버지께서 꽹과리를 하시고 사설을 많이 하셨어요. 때문에 저도 그 기억을 더듬어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어요.



△풍물패 따라 다닌다고 아버지에게 혼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소리의 영향을 다 받았지요. 그 중에 아버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어릴 때 꽹과리 치고 지신 밟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지신밟기 소리도 그때부터 뭔지도 모르고 따라하면서 습득한 거 같아요. 저는 하나를 정해서 하는 게 없고요.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있잖아요. 어릴 때 기억 더듬어서 이럴 땐 이렇게 하더라. 떠올려서 지금도 하고요. 요즘은 무싯날(특별히 정해놓은 일이 없는 날)이라도 제가 끼인 자리에는 그런 퍼포먼스가 이뤄지고 그래요. 장구도 어릴 때부터 계속 치고 가지고 있어요. 장구도 제가 일평생을 안 버리고 굿거리 자진머리 정도는 계속 치고 있었어요. 지금처럼 구공타법이니 이런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니고 그냥 단박이라도 토속박이지요.

제가 한번은 꽹과리를 치니까 “어? 이 박을 안다 말이야?”이래요. 그래 “왜요” 하니까. “아 이거 유명한 문화재 선생님 박인데”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요 우리 아버지가 이 박 매일 쳤어요.” 하니까, “어찌 옛날 그 어른도 박을 아는구나.” 하시대요.

옛날 어른들은요. 손가락을 보면 밑에도 놔두고 치고 들고도 치고 이러잖아요. 장구도 그냥 목에만 걸어가지고 장구가 목에 왔다 갔다 해도 그거 희한하게 균형 맞춰서 박자를 맞춘다 말이에요. 그게 진짜지요. 몸에 베인 박이요.

아버지하고 맨날 싸우기만 했지요. 그리고 제가 다섯 여섯 살 때 풍물패에 가서 따라다녔는데, 제가 초등학교 3, 4학년 쯤 되니까 “부끄러울 때도 됐는데 다 큰 가시나가 계속 따라다닌다고” 아버지가 한번 크게 혼을 냈어요. 이후로 살짝 피해가지고요. 매일 꽁무니에요, 두 명 정도 들어가 숨어버리면 안보이잖아요. 그래가 종일 또 따라다녔어요. 발도 똑같이 맞춰가면서 따라다니고요. 나는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 발을 맞추잖아요. 그게 재밌었어요. 각단이라 하거든요. 그게 네 각단이니까 하루 종일 돌아다니거든요. 그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어릴 때 또 굿판 좋아하고요. 경기민요도 다 굿판에서 나왔잖아요. 지금 민요가 전부다 굿판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농악부를 들어갔어요. 농악부를 들어갔는데 우리 아버지가 극구 말려가지고 하고 싶은 것과 멀리 엉뚱하게 살다가, 나이 오십 넘어서 이제 예술대를 들어갔어요.



△소리를 예쁘게 한 엄마

우리 엄마는 경주 분이에요. 엄마는 목소리가 정말 예뻐요. 모 심기 소리, 쟁피 훑는 소리 많이 했어요. 절도 있는 소리를 했어요. 엄마가 제가 어릴 때 내 울었거든요. 밭 메면서도 울고 그랬어요. 빨래를 하러 가면 엄마는 빨래 다라이를 이고 솥도 하나 들고 나는 둥거지(장작) 가베이 몇 개 들고 따라가요. 가면서도 엄마가 소리를 하거든요. 노래를 시작하면 구구절절이 다 나와요.



아고 아고 울 엄마가 날 낳아가 키울 때는

부자 집에 시집 가가 잘 묵고 잘 살아라고

공부시키고 키웠고만은 내 팔자는 와 이라노



이래 노래 부르면서 울면서 가는 거라요. 그러면서 내 한번 쳐다보고. 가가지고 빨래터에 가면, 빨래터가 달리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옛날에는 땔감을 다 자족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랑가(냇가)가 휑해요. 요즘은 숲으로 우거졌지만요. 옛날에는 휑하잖아. 그러면 돌 두 개 해 놓고 솥 걸어놓고 한쪽에는 빨래 삶고, 한쪽에 물 흐르는 쪽에는 빨래 빨고. 지대 또 걸어 놔요. 나무 이런 데 걸어놓으면 말려서 물 좀 떨어져요. 그 동안에 손으로 빨래하고요.

아버지 소리는 지신밟기 소리 하고 약간 무속 신앙에서 하는 그런 음이었고요. 할머니는 경기민요 가사 비슷한 거에 우리 지역 뭉뚱거리 소리에 음을 실어요. 쾌지나칭칭나네. 유희요 많이 하셨어요. 엄마 같은 경우에는 절도 있으면서 얄팍한 소리였어요.



△토속 소리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긴소리가 없는 게 안타까워요

안타까운게요. 사료들이 긴 게 없어요. 최소 5분 이상이요, 모심기소리를 제외하고는 엮음 형식이라든가 주고받는 형식의 긴 소리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소리가 너무 짧다보니까 가사를 만들어서 붙여야 되는데, 그러면 어사형에 있는 가사를, 나무 목발 지게 소리에 있는 가사를 어사형에 갖다 붙인다든가. 내용은 비슷하니까요. 긴소리가 없는 게 안타까워요.

제 추측인데요. 우리가 어사형에 한 단락씩 있는 가사들 잇잖아요. 그게 정선아라리처럼요. 아라리도 처음부터 그렇게 길진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분명히 누군가는 그걸 엮어서 만들어서 엮었을 거고요. 우리도 어사형, 짧은 가사가 무수히 많잖아요. 우리도 그걸 엮어서 아라리처럼 엮음으로 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저도 짧은 가사는 엄청 많이 아는데 흥해농요 토속민요요 모두 우리 지역이다보니 단어 한 두 개만 다르지 거의 유사하거든요. 그럼 그런 걸 엮어서 정선아라리처럼 긴 소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요를 좋아해요. 노동요는 뭔가 착 달라붙는 끈끈한 애환이 있는 거 같아 좋더라고요.



△토속민요의 관찰과 올바른 전승에 대한 고민

모포줄처럼 그런 문화재에 풍물, 농요, 우리 신라 문물의 그 토속적인 세시풍속을 하나로 포항, 경주지역을 아우러서 만들고자 하는 거죠. 그래야 그게 우리 것이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꿈이 있어요. 그래서 학력도 필요해서 예술대학을 늦게 다니는 거예요.



후학 양성

토속 민요는 음률이 반복돼요. 애들은 두 소절만 가르치면 나머지는 가사만 가르쳐 주면, 얹어서 잘 따라 해요. 그런데 어른들은 한 단락 끝나고, 그 다음 단락 또 가르쳐 줘야 해요. 아이들 일수록 더 토속적인 걸 가르치고요. ‘나물캐는 노래’라던가, 나물을 캔다, 밭을 맨다던가, 어른들은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꾸 불러내줘야 되거든요 .주치를 캔다던가 그런 것들도요.

해는 지고~~~ 날 저문 데 나물캐는 저 처자야~~~

너거 집이 어디 간데~ 해 저물고 저문 날에 나물 캐러 나왔느냐~~


자료제공=경북기록연구회·도서출판 아르코
 

김명희씨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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