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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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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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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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비명, 밀려오는 공포, 고통 속 절규, 갑작스러운 고요,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오는 귀를 찢을 듯한 하이톤, 불안하고 음산한 분위기, 끔찍한 전쟁의 참상.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2020)가 작곡한 전위음악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다.

펜데레츠키의 유명한 곡 중 하나인 이 곡은 마치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히로시마의 순간을 그리듯 그 고통과 절규가 표현되고 있다. 음악계에 충격을 던지며 펜데레츠키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이 곡은 52개의 현악기로 구성됐다. 펜데레츠키는 현악기를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브릿지 윗쪽에서 소리를 내거나 악기를 두드리는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독특한 ‘소리’와 ‘소음’들을 만들었다.

귀를 찢을듯한 비명 같은 소리들이 모인 이 작품은 다소 충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펜데레츠키는 이 곡을 처음 작곡할 당시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히로시마의 잔혹한 참상을 마음에 두고 작곡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리에 관한 시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원제 역시 존 케이지의 ‘4분33초’에서 영향을 받아 ‘8분37초’로 붙였다. 하지만 펜데레츠키는 이 곡이 실제 연주되는 것을 듣고 나서 ‘작품의 감정적 영향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곡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곡의 연관성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에게 곡을 헌정하기에 이른다. 곡을 듣고 있노라면 희생자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가 아닌 다른 제목은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잔혹한 이 음악은 비명을 지르는 입 모양에 주목했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뭉크의 ‘절규’와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그는 입을 벌리고 절규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그렸다. 베이컨은 “나는 항상 입과 치아의 실제 모습에 매우 집착했다”며 “모네가 일몰을 그린 것처럼 입을 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입에 대한 연구에 어느 정도 집착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그린 은 벨라스케스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세로로 그려진 선들로 인해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그림에서 교황은 마치 고문의자에 앉은 것처럼 보인다.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교황은 더 이상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다. 인간의 내재되어있는 본능적 공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베이컨은 분노와 혐오마저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베이컨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이미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작품을 시작할 때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우연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낳는다고. 어쩌면 펜데레츠키가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곡이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음악으로 거듭난 것과 흡사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베이컨은 고깃덩어리처럼 사람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우리는 미래의 시체이다. 나는 정육점에 갈 때마다 동물 대신 내가 걸려있지 않은 것에 항상 놀라곤 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 그림은 폭력적이지 않다. 폭력적인 것은 다름아닌 삶 그 자체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는 짐승을 죽여 전시하듯 걸어놓고 사고파는 행위가 정육점을 통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인간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다.

베이컨은 도살장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고 관찰해 창작에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아있는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며 고통스럽고 끔찍한 일인가. 그가 표현하고 있는 인간의 몸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상처 난 고기덩어리와도 같다. 인간에 의해 먹혀 없어지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그처럼 힘이 없는 동물들의 운명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유한성을 표현하는 것일까? 그의 그림이 그토록 그로테스크 함에도 전 세계적인 공감과 사랑을 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고통을 겪고 산다. 때로는 찢기고, 때로는 밟히고 때로는 난도질 당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 아픔을 온전히 위로 받고 사는 인생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상처와 아픔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도 나와 같은 공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토록 외롭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물리적 아픔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은 공포를 포함한다는 것.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공통점이다.

“어둠 속에서 모든 색상은 일치할 것입니다.”(프란시스 베이컨)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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