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건방진 정치’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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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야권의 승리’에 대한
김종인 ‘건방지다’ 발언 논란
재보선서 ‘상왕’ 논쟁도 벌여
둘 사이 10년전 앙금이 원인
金, 안 대표에 대한 실망감이
‘건방지다’라는 말로 표출된듯

고종 13년 병자년, 큰 가뭄이 들어 나라 안 방죽(물을 저장하기 위해 쌓은 둑)이 모두 말라붙는 일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바짝 말라버린 방죽을 보고 마를 건(乾) 자를 써서 ‘건방죽’이라 불렀다. 방죽은 본래 물을 가득 담고 있어야 하지만 말라버린 ‘건방죽’은 제 구실을 못한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나대는 사람을 비유해 ‘건방죽’이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방죽이다’는 표현이 발음변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이 ‘건방지다’가 됐다.

‘건방지다’의 의미에는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체하거나 남을 얕잡아보듯이 행동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적대적인 표현인 ‘놈’을 붙여 ‘건방진 놈’과 같이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라는 말도 비슷한 표현이다. 못된 사람이 자기 행동을 뉘우치기는커녕 잘난 체하고 나쁜 짓만 하는 것을 빗댄 속담이다. 둘 모두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두고 사용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내려놓은 김종인 전 위원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건방지다’라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야권의 승리’라고 한 데 대해 지난 9일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인데 어떻게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있느냐”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통상적으로 여당이나 야당이 합종연횡으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여권의 승리’ ‘야권의 승리’라고 부르는 건 당연하다. 더군다나 한 때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단일후보를 성사시키기 위해 한 배를 탔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그런데 왜 김 전 위원장은 이처럼 과격한 언사를 동원해 안 대표를 몰아붙였을까?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입문하며 김 전 위원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난해 9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 그 분(안철수)에게 ‘정치를 하고 싶으면 국회부터 들어가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했더니 ‘국회의원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의원을 하라고 하느냐’라고 하더라. 이 분이 정치를 제대로 아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자리를 떴다.”

시작부터 어긋난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삐걱거렸다. 2016년 총선에서 당시 민주당을 이끌었던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을 탈당해 경쟁구도에 있던 안 대표를 향해 ‘불리하니 (민주당을) 나간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차르’라며 맞받아쳤다.


이번 4·7 재보선 서울시장 경선과정에서도 주도권을 놓고 ‘상왕’ 논쟁을 벌였다. 당시 단일화 협상에 진통을 겪던 안 대표는 “(오세훈) 후보 뒤에 숨은 상왕”이라며 비판했고, 김 위원장측 이준석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안 대표 부인 김미경 교수를 겨냥해 ‘여자 상황제’라고 역공했다. 이에 안 대표가 동명이인인 김 전 위원장 부인(김미경 명예교수)을 가리켜 “그 분과 착각했나”라고 하자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맹공했다.

이뿐 만 아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가 윤석열 전 총장과 함께 할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합쳐질 수 없다며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철수가 마음대로 남의 이름 가져다가 이야기한 것”이라며 비하했다. 또 마지막 비공개 회의에서는 안 대표를 경계하라고 신신당부 했다고 한다.

배현진 의원이 지적하듯 김 전 위원장이 이처럼 ‘스토킹처럼 집요하게’ 안 대표를 비난하는 이유는 묵은 앙금 때문이다. 그는 10년 전 새정치를 표방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안 대표에 대해 ‘킹 메이커’를 염두에 두고 만남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첫 마디에 ‘국회 무용론’ 발언을 듣고 발길을 돌린 뒤부터 안철수를 버리기로 작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김 전 위원장 뇌리에는 아직도 안 대표가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인물로 각인돼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토록 끈질기게 ‘비토’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안 대표가 ‘야권 통합’을 부르짖을 때에도 “실체가 없는데 무슨 야권 통합이냐”며 일축했다. 정치를 모르는 자가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 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 인식의 결정체가 ‘건방지다’라는 말로 표출됐다.

이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모두 비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권 통합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김 전 위원장이 노욕(老慾)을 부리는 것처럼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정권창출을 위한 야권통합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 비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은 내려놓았지만 대선에서의 역할까지 내려놓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안 대표에 대한 우려가 기우일 지 아닐 지는 대선이 임박하면 판가름 날 것이다. 건방진 소리 같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누워서 침 뱉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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