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세계 최대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 웨이사의 워런 버핏 회장이 자기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36조원)를 사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15%도 삶의 마감 전후에 모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벌써 몇 주째 한 몸에 받고 있다. 모범적 자선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기부문화를 생각케 하는 바 있어 더욱 그런가 보다.
너도나도 버핏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진작 이런 기부문화가 꽃피지 않았는지 안타까워하거나, 부자들의 편법 상속을 탓하는 소리들로 지면을 가득 메워오고 있다. 그런 지적들이 일견 타당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부자들의 기부문화가 있었다. 우리 민족은 자신과 그 가족만 챙겼지 남에 대한 자애심이 약한 민족이라고 탄식만 내던질 일이 아님을 우리는 `경주 최부자’의 경우에서 본다.
조선시대의 경주 최부자는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실천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방 백리 안에 굶주리는 이가 없게 하라, 흉년에 논을 사지 마라. 전답의 소유는 만석을 넘지 않도록 하라,’ 비록 버핏처럼 무제한 재산을 늘리지도 않았고, 말년에 큰 재산을 한꺼번에 왕창 기부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최부자의 자선이야말로 버핏의 자선에 비하면 오히려 카리스마와 자비를 함께 갖춘 게 아닐까.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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