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애인의 아들과 결혼한 이유…고독과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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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애인의 아들과 결혼한 이유…고독과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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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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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옆의 집’.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그림이다.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버려진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사뮤엘 바버(Samuel Barber, 1910~1981)의 오페라 ‘바네사’가 떠오른다.

막이 오르면 바네사의 저택이다. 미모의 여인 바네사는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조카 에리카와 함께 살고 있다. 20년간 집 안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살아가고 있는 바네사. 아직도 아름답지만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아 집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천으로 가려놓았다. 어머니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

바네사에게 어느 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그녀가 20년 전 사랑했던 남자 애너톨이다. 하지만 세월에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이기 싫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사랑할 것 같다고 말하는 애너톨. 용기를 내어 바라보는데, 그는 바네사가 알던 애너톨이 아니다. 애너톨과 같은 이름을 가진, 20년 전의 그를 똑 닮은 그의 아들인 것.

아들 애너톨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한다. 이후 아들 애너톨은 그녀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하는데, 그날 밤 그는 에리카와 잠자리를 가진다. 에리카는 이 사실을 할머니에게 털어놓게 되고 할머니는 그런 에리카를 비난한다. 저택에 머무는 동안 에리카에게 청혼하는 애너톨.

하지만 에리카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애너톨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에리카. 그 동안 점점 가까워지는 바네사와 애너톨. 설상가상 에리카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이어 들려오는 바네사와 애너톨의 약혼소식. 에리카는 이에 큰 충격을 받고 끝내 유산을 하기에 이른다.

바네사와 애너톨은 결국 결혼해서 에라카만 남겨두고 저택을 떠난다. 이들이 떠난 저택엔 예전 바네사가 그랬듯, 에리카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할머니만 남겨진다. 에리카는 하인들에게 집안의 모든 거울을 가리고 창문과 문을 굳게 닫으라는 지시를 내리며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온 바네사, 어머니와의 대화뿐 아니라 거울을 가림으로써 어쩌면 자기 자신과의 소통조차 차단해버린 그녀. 그녀의 단절과 고립은 조카 에리카에게 이어지며 오페라는 철저히 고독하다.

‘집’이 주는 의미는 크다. ‘집’은 단순히 사는 곳을 넘어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버는 동성 연인 메노티와 함께 산 집에 ‘카프리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집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심지어 그는 집의 이름을 따 ‘카프리콘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이어진 그들의 사랑이 끝난 후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리게 되고 카프리콘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단절과 고독, 소외감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주제이기도 하다. 1920년대 미국은 산업화로 인한 운송체계의 근대화로 큰 변화를 겪었다. 사회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줬고 1차세계대전과 경제대공항을 경험한 미국인은 상실감과 우울함을 크게 겪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침체했고 호퍼는 이런 사회의 모습을 그림에 잘 담아냈다.

‘철길 옆의 집’은 당시 산업화를 대표하는 철도 앞에 놓인 빅토리안 풍의 집을 그려 넣은 것으로 호퍼의 출세작이다. 산업화로 인해 버려져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집에는 쓸쓸함과 황량함, 외로움, 고독이 묻어난다. 집 앞 철길은 사회와의 단절을 나타내고 있다.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집들은 주로 텅 빈 느낌이다. 사람이 없는 집은 물론 사람이 있다 해도 홀로 있는 여인의 허탈한 모습이 주를 이룬다. 또한 같이 있어도 단절된 듯한 연인이나 부부 등 외로움과 상실감이 담겨있다.

호퍼는 당시 미국에 유행하던 아방가르드 스타일과는 달리 자신만의 고전적 화법을 유지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호퍼는 당시 현대인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아침의 태양’, ‘주유소’와 같은 작품들은 그야말로 그대로의 일상이다.

호퍼의 작품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표면적 삶의 모습이 아닌 그 이면에 내제되어 있는 공허함과 우울함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이런 감정이 스며들듯 관객의 내면에 닿았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 등 수 많은 예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렇게 그의 그림은 영감이 됐다.

바버 역시, 당시 주류를 이뤘던 무조성 음악과 같은 난해한 ‘현대음악’의 흐름과는 달리 고전적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의 대표작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다. 영화 ‘플래툰’의 주제곡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 곡은 지금까지도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내면을 파고들어 폐부를 찌르는 듯한 멜로디에 듣는 이들은 깊은 감상에 빠진다. 바버의 음악이 주는 내면의 울림은 호퍼 그림의 그것만큼이나 심오하다.

고전적 목소리로 당시 현대인들의 깊은 고독과 우울을 표현해 낸 호퍼와 바버.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으로 고립되어지는 요즘인지라 둘의 작품은 그렇게 감정적이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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