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돌아가는 LP를 바라보며
전자책과 LPTape나 CD의 시대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보다 앞서 맥이 끊겼던 LP 열풍이 다시금 불어오고 있다. 귀한 LP를 헐값에 처분한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겠지만 지금 세대는 LP를 음악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책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아가고 있다. E-Book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책 시장의 종말을 예견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날은 영영(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종이책을 읽던 사람은 여전히 종이책을 구매하는 것이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초판본을 복간하거나 과거의 작품을 발견하여 그 당시의 형태로 내놓기도 한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물론 전자책이나 디지털 음원은 강점이 많다.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하여 (혹은 저장해둔 데이터로) 원하는 음악과 책을 재생 및 재현할 수 있다. 더군다나 데이터는 현실 세계에서 무게나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책이나 LP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이사를 많이 다니는 내 경우에도 늘 골치 아픈 건 책과 책장이었다. 서재의 책이 휴대폰이나 테블릿PC 속에 모두 들어간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한 인간의 뇌에 경험과 지식이 저장되듯 데이터 역시 고도의 기술로 점점 작아지고 빨라지고 있다.
사물 그리고 사물들
종이책으로 글자를 배우고 LP나 CD로 음악을 들으며 자라온 나는 아무래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더 친숙하다. 책과 LP는 문학과 음악 그 자체라 해도 좋겠지만 사실 문학과 음악을 담는 물성을 가진 사물이다. 이러한 사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데, 나의 세계는 바로 이들에 의해서 완성되었기(완성되는 중이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죽는 날까지는 이들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책과 LP 속에 담긴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품은 외형, 즉 이 사물 그리고 사물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까지 요요를 그리워하게 될지 몰랐다. 손가락에 실을 걸고 아래로 던졌다가 이내 손바닥으로 돌아오는 그 사물의 감촉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엉성하게 조립했어도 축구 골대 너머로 날아가던 행글라이더나, 미술실의 찰흙, 음악실의 단소, 골목길의 고무 인형, 딱지…. 내가 만지고, 부수고, 이어붙이던 그 모든 것은 내 손끝에서 자라났다. 아니, 내가 그들에 의해 자라난 것일 테다. 내 손에 각인된 그 추억의 정체 속에서 세상은 꼭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운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
3~4분여 되는 음악이 시간과 거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LP는 빙그르르 돌고 있고, 그 속에서 나는 함께 돌길 염원하는 꿈을 꾸고 있다. 어쩌면 음악은 나른한 정오의 단잠 같은 음표의 꿈. 지구는 돌고, 달도 돌고, 우리는 모두 도는데, 시간과 시대와 시절은 자꾸만 나를 떠밀고 있다. 그래서 음악은 다시 흘러야 하고, 책은 다시 누군가에 의해 펼쳐져야 한다. 오늘은 언젠가, 다시 언젠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저 먼 어느 날, 조금은 변형된 형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이 내겐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