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현수막(1)
  • 경북도민일보
노란 현수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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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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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마음속에 감춰두려 했었다. 그러나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름다운 스토리라 생각되어 이글을 쓴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길에서 만나면 언제나 밝은 얼굴로 먼저 반갑게 인사하는 좋은 이웃이기도 했다. 나와 나이도 비슷했고 서로 호감이 갔던 터라 금세 친해진 우리는 퇴근 후에 가끔씩 소주잔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봄비가 촐촐히 유리창을 적시는 어느 봄날 저녁, 민속주점에서 그가 들려준 첫사랑 이야기다. 우선 그의 첫사랑 스토리를 다 듣고 난후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가 부럽다는 것과 왠지 모르게 푸서리 같은 가슴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기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스토리는 이러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과 함께 강원도 어느 계곡에 캠핑을 갔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아 자리가 없어 구석진 강가에

텐트를 쳤다. 하지만 어떠랴! 삭막한 서울풍경에 비교하면 그곳은 어디든 낙원 같았다. 그 옆에는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들 몇 명이 저녁준비를 하며 재잘대고 있었다. 얼핏 봐도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라든가 차림새가 근처 시골고등학교 여학생들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뒤에 모닥불을 피우고 빙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레 옆에 있던 여학생들과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한 여학생과 유난히 자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모닥불에 주위에 둘러 앉아 서로 손뼉을 치며 그 당시 유행하는 가요란 가요는 모두 불러댔다. 공부하느라 억눌려져 있던 청춘의 열정을 불꽃보다 더 뜨겁게 태웠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지자 자꾸만 나와 눈을 마주쳤던 여학생과 둘이서 텐트와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듯 내 얼굴을 쳐다봤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있었다. 손끝을 타고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심장까지 전해졌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30년이 지났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밤하늘에 반짝이던 그 무수한 별 무리들, 간들바람에 내 얼굴을 스치던 그녀의 홀보들한 머릿결, 코끝에 스며들던 그녀의 체취,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던 콩콩 뛰는 그녀의 심장박동을요”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새벽 무렵이 될 때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폭우가 거세게 쏟아졌다. 계곡물이 불어나 모두 텐트를 걷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황급히 헤어져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주소를 물었지만 볼펜이나 종이가 없었다. 그래서 박스를 찢어 모닥불의 숯 한 덩이를 주어 그녀의 주소를 받아 적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혹시나 주소를 적은 박스조각을 잃어버렸을까봐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때부터 그녀와 나는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해 겨울, 나는 강원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 속에 빨려 들어가 그 속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그녀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부모님들이 계실 텐데 괜찮으냐!” 고 물었지만 그녀는 빙긋 웃으며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그녀의 집은 산골짜기 끝자락 작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감자랑 옥수수 등 밭농사를 짓는 분들이셨다. 그녀가 친구라고 소개하자 시골 분들답지 않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곤드레 밥을 배불리 먹고 그녀와 눈 덮인 들녘을 하염없이 거닐었다.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가던지 그만 돌아갈 막차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집에서 묵어야 했다. 늦은 밤 그녀는 부모님 방으로 가고 나는 그녀의 방에서 잤다. 그녀가 덮던 이불을 덮고.

다음 날, 우리는 손을 흔들며 버스차창너머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헤어졌다. 그녀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공부하랴! 리포트 제출하랴! 늘 시간에 쫓기기도 하였지만 캠퍼스에는 예쁜 여학생들이 바글거렸다. 비교적 인기도 많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애들도 몇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감정이 식어갔다.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편지가 와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캠퍼스를 마구 굴러다니던 늦은 가을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교문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자 그녀가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촌스런 옷차림새, 나는 누가 볼까봐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어. 나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까 다신 찾아오지 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차갑게 돌아섰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한 멍한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아렸지만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다니며 30여년을 살았다. 어쩌다 가끔씩 그녀가 생각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비정하게 그녀를 외면했던 야멸친 나 자신이 싫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계속>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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