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 모용복선임기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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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 상속세 12조
국내·외 통틀어 역대 최고 규모
유족들 생전 고인의 뜻 받들어
유산 절반 사회 환원키로 결정
우리나라 두번째 정진석 추기경
향년 90세 나이로 선종에 들어
통장 잔고 800만 원이 전 재산
각막기증 등 모두 나누고 떠나
서로 다른 위치서 빈손행 실천
두 거목 떠난 빈자리는 크지만
고귀한 정신은 오래도록 남아
큰 울림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모용복 선임기자.
2018년 작고한 가수 최희준 씨가 부른 ‘하숙생’(1965)은 제목이 암시하듯 인생의 덧없음, 즉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노래한 불후의 명곡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첫 소절부터 노래 전체에 걸쳐 인생무상과 허무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로 시작하는 2절에서는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오는 것처럼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는 법이니, 정이나 미련 따위를 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재물이 넘쳐나고 권세가 높아도 죽을 땐 터럭(毛) 하나도 갖고 갈 수 없으니 그저 구름처럼 강물처럼 정처없이 살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고(故)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세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삼성가(家) 유족들은 이 회장의 상속세로 12조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 규모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상속세의 3배가 넘고, 최근 3년간 국세청이 거둔 상속세 합계보다도 더 많은 금액이라고 하니 삼성의 명성이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보유한 재산은 30조원 규모로서,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이중 절반가량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상속세 12조원과 함께 미술품 기증, 의료공헌 등을 합쳐 무려 15조원에 달한다. 우리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회 환원이다.

유족들이 이처럼 통 큰 환원을 결정한 배경에는 생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온 이 회장의 뜻이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최고부자인 이 회장도 죽을 땐 저승길에 쓸 노잣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갑부가 아니었다.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알고 미리 준비했기에 비록 육신은 떠났어도 정신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이 회장은 생전 자신의 집무실에 부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쓴 ‘공수래공수거’ 서예작품을 걸어놓고 늘 가까이 했다고 한다.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이병철 회장은 이 글귀를 무척 좋아해 이 글귀로 된 17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기업 오너 부자(父子)가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깊이 깨치고 이를 실천하려고 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사(勞使)가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오늘날 많은 점을 시사한다.

최근 ‘빈손행(行)’을 실천한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지난달 27일 향년 90세로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이 그저께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그는 1998년 故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된 후 2006년 2월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염수정 추기경은 선종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였다”며 “어머니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명망가든 이름 없는 촌부든 죽음 앞에서 등급이 따로 있을 수 없지만, 종교와 정파를 떠나 우리사회 큰 어른으로서 모범이 되어온 점을 생각하면 그를 잃은 상실감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정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행복’하라고 했으며, “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평생 동안 봉사하는 사제의 삶을 살았으며,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각막을 기증하는 등 모든 것을 주고 떠났다.

정 추기경이 남긴 재산은 통장 잔고 800만원이 전부였다. 12년 전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통장 잔액이 9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고인이 평소 얼마나 나누는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의 삶을 살다 빈손으로 떠난 우리시대 위대한 성직자다.

재벌과 성직자, 서로 다른 위치에서 ‘빈손행’을 실천한 두 거목(巨木). 비록 떠난 빈자리는 크지만 고귀한 정신은 오래도록 남아 큰 울림으로 빈자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두 ‘하숙생’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으며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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