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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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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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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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사적인 엘피의 사적인 장소1



두고, 듣고, 즐기고

바야흐로 비대면 시대다. 사람을 만나 무언가를 함께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극장에서 공연이나 영화를 보기에도 망설여지니 음악을 함께 듣고 즐기는 자리는 점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인과 LP를 들으러 가선 음악에 진탕 취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혼자 느끼고, 즐겨야 하는 일이 많아졌으므로 혼자 질문하고, 더욱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 순간도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작업실을 옮겨서인지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소음에 대한 우려도 있겠고, 아직은 이 공간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도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음악은 멀어져가기만 한다. 속상한 일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묵혀둔 음악을 다시 듣기로 했다.

기왕이면 조금 색다르게 음악을 즐겨보자. 그동안 내가 듣고 쓴 음악들을 어느 장소에 슬며시 두고 오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반드시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서 들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 파도는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다가 생을 그득하게 안고 밀려가길 반복한다. 선율이 실린 파도가 둥글게 흐르고 흘러 지구를 미끄러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다.



You‘ve got a friend

킹 크림슨의 ‘21st Century Schizoid Man’은 기차역 굴다리 아래에서 들으면 어떨까.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샤우팅을 해도 무방하겠다. 물론 머리를 뒤흔들면서. 밥 웰치의 ‘Sentimetal Lady’를 듣기 위해서는 칵테일이 필요하고 밤이어야 하므로 한적한 펍이나 해변의 노점이라도 좋겠다. 시가를 곁들여도 좋겠고. 폴 사이먼의 ‘Everything put together falls apart’는 노래가 길지 않고 잔잔하기 때문에 강가에서 들어야 한다. 통기타가 있다면, 그대가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눈을 잠시 감고 있으면 2분여의 시간은 세상의 바깥을 다녀온 기분을 선사할 수도 있다.

제임스 테일러의 ‘You’ve got a friend’는 당연히 친구와 들으면 좋겠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오래된 장난감을 앞에 두고 자연스레 멀어진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출할 것이다. 그러다 울컥, 당신이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제임스 테일러가 이렇게 노래하겠지. You‘ve got a friend.



음악은 상상

바람 부는 날에는 필시 창문을 열고 ‘Blowin’in the wind’를 듣길 권한다. 바람 속에 어떤 목소리가 섞여 있는 기분이라면 목소리를 위해 잠시 기도해도 좋겠다. 물론 창문을 닫아도 밥 딜런은 까다롭지 않게 당신을 찾아와줄 것이다. 만약 오늘 새 옷을 입었거나 새 신발을 신었다면(화려한 색깔이라면 더욱이) 비지스를 들어야만 한다. 어디를 걷게 되건 발걸음이 달라질 것이고 리드미컬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주로 거울 앞에서 비지스를 듣지만.

오늘밤 레드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면, 그것도 한 병을 다 비울 작정이라면 귀가하는 길에는 알 재로의 목소리를 찾으시길. 만약 알 재로를 틀어놓은 희귀한 카페를 발견한다면,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고 돌아오시기를. 그날만큼은 카페인이 우리를 영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Teach me tonight’이나 ‘Spain’이 좋을 테지만, 오늘의 나는 ‘Take five’를 신청할 테다. 물론 코르크 마개를 연 뒤 말이다. 나의 행복은 바로 그것이다.

만일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선곡할 것이다. 정말 그러한 상황에서 이 곡을 듣게 된다면 어디로도 휩쓸리지 않고 바로 그곳에, 우리가 동시에 생각하는 그곳에 가닿게 되는 위로를 얻을 것이다. 나는 이 음악들이 바로 그 장소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비록 내 공상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라고 해도.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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