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 변경
  • 모용복선임기자
지명(地名) 변경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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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결정 짓는 이름처럼
地名은 마을의 특징을 나타내
정감이 있고 아름다운 지명은
여행객 등 사람의 발길 이끌어
도내 지자체 지명바꾸기 러시
좋은 지명으로 정체성 살리고
지역 경제활성 일석이조 효과

몇 년 전 일이다. 죽장에서 청송으로 향하는 31번 국도를 달리다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두마리’

포항에서 나고 자랐어도 마을 이름이 생소했다. ‘두문동’ ‘두메산골’ ‘두루마리’ 등 온갖 이름을 떠올리며 푯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마을 초입 과수원을 끼고 소로(小路)를 한참 달리니 사람들 몇이 개천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대각사를 지나니 오른편으로 편백나무숲 간판이 보인다. 나중에 다시 오면 걸어보리라 기약하고 ‘두마리’로 향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나오고 골짜기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30여분 차를 달리니 폐교를 개조해 조성한 야영장이 나왔다. 입구에 ‘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마 산촌생태마을’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포항지역에 이런 아름다운 오지마을이 있다니! ‘두마리’는 두메산골에서 따온 순수 한글지명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름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듯이 지명은 마을의 특징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이 태어나면 온갖 정성을 들여 작명(作名)을 하는 이유는 좋은 이름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명도 마찬가지다. 정감 있고 아름다운 지명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지명에 이끌려 무작정 마을에 들어선 경험이 한 번 쯤은 있다. 그래서 그곳이 이름에 걸맞은 곳이라면 여행객은 반드시 이 곳을 다시 찾는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경북지역 지자체들이 지명 바꾸기에 속속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을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경북에서 모두 14번이나 지명 변경이 이뤄졌다.

2007년 1월 경산시는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쟁광리’를 옛 마을 이름인 ‘일광리’로 바꿨다. 포항시는 2010년 1월 ‘대보면’을 일출 명소인 호미곶 이름을 따 ‘호미곶면’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울진군은 2015년 2월 금강송이 많은 ‘서면’을 ‘금강송면’으로, 매화나무가 많은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바꿨다. 대가야 유적지가 많은 같은 해 4월 고령군도 대가야국 도읍지로서 위상을 높이고 브랜드화 하기 위해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지역 특성을 살린 명칭변경이다.

2016년 2월 예천군은 일제가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정한 단순 방위 지명인 ‘상리면’과 ‘하리면’을 각각 ‘효자면’과 ‘은풍면’으로 바꿨다. 효자면은 조선후기 효자로 유명한 도시복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은풍면은 옛 지명 은풍현을 되살린 이름이다.

2017년 3월 안동시는 일제강점기 지어진 ‘자품리’를 옛 마을 이름인 ‘재품리’로 변경했다. 재품리는 인재가 많이 나는 마을이란 뜻이다. 청송군은 2019년 3월 ‘부동면’과 ‘이전리’를 각각 ‘주왕산면’과 ‘주산지리’로 바꿨다. 지역 관광명소를 지명에 반영한 경우다.

상주시는 지난해 1월 ‘사별면’을 ‘사벌국면’으로 바꿨다. 사벌국은 삼한시대 상주에 있었던 작은 나라다. 군위군은 올해 1월부터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변경했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고로면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입적(入寂)한 인각사가 위치한 점을 고려했다.

경주시는 지난 4일 문무대왕릉 일원에서 ‘문무대왕면’ 선포식을 가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 100년 이상 써오던 ‘양북면’ 명칭을 ‘문무대왕면’으로 변경한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엄숙한 자리였다.

양북면은 조선 시대까지 감포읍과 양남면을 합친 이름인 동해면으로 불렸지만,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단순한 방위 구분에 따른 이름인 양북면이 됐다. 삼국통일 대업을 이룬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고 호국사찰 감은사 터가 위치한 이 곳이 의미 없는 명칭 탓에 그저 그렇고 그런 마을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위대한 문화유산을 살려 지명을 바꾸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주시는 이 같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민 10명 중 9명이 명칭변경에 찬성을 했으며. 10명 중 8명이 ‘문무대왕면’을 선호했다. 이어 주민들로 구성된 명칭 변경 추진위원회 의결을 거쳐 ‘읍면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경주시의회를 통과해 마침내 100여 년 만에 정체성을 지닌 마을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름이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친구가 많다고 한다. 이름이 예쁜 여성이 미인으로 인식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됨됨이와 관계없이 이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곤란하지만, 이름이 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좋은 이름을 선호하는 시대, 도내 지자체들의 좋은 지명을 찾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의미 있는 이름으로 지역 정체성을 살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경제까지 살린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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