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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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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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사적인 엘피의 사적인 장소2



음악의 모양

음악은 어디에서 듣는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공항 라운지에서, 호텔 로비에서, 한적한 커피숍에서, 어두침침한 재즈 바에서. 음악은 구부러지고, 반사되었다가, 흩어지고, 또 번지기도 한다. 큰 공연장보다 작은 스튜디오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있고, 야외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사운드가 있다. 까를라 브루니는 대극장 콘서트보다는 귓가에 속삭이듯 읊어줄 때 더 빛나는 목소리다. 그러나 AC/DC의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나는 멜버른 에티하드 스타디움 바로 옆 아파트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AC/DC의 사운드에 심장이 미쳐 날뛰는 현상을 처음 겪었다. 물론 그런 음악이 매일 흐른다면 창문을 열어둘 수 없겠지만.

겨울에 가까워질 즈음이면 자연스레 조지 윈스턴이나 사라 맥라클란, 그리고 레이첼 야마가타가 떠오른다. 겨울의 사물은 소리를 머금고 한참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 사이 세상은 보다 고요해지고 우리는 잠시 꿈을 꾼다. 그러나 꽃이 피고 태양이 춤추는 봄이 오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척 맨지오니가 떠오른다. ‘Feels so good’이나 ‘Give it all you got’은 움튼 꽃봉오리를 간지럽히는 봄비처럼 맑고 기운차다.



그 모습 그대로

청보리 색이 진해지는 여름밤이면 어디선가 돈 맥클린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좋겠다. 그를 대신할 사람은 여행 스케치 혹은 최성원이다. 나는 마시지 않아도 취할 것이며, 곁에 없는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다 짙은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찾아오면, 시드니 베쳇이나 미셸 페트루치아니, 허비 행콕이나, 팻 메스니, 누구라도 좋다. 어떤 재즈라도 좋으니 내게 오라. 나는 기어코 밤을 새워 그 음악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리.

맑은 밤이 지나가고 있다. 당신은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는가. 이소라를 듣는가. 이상은을, 이승환을? 유재하나 김광석은 어떤가.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말이다. 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이제 우리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볼 수 있을 테다. 바이러스도 공포도 없는 세상이 얼른 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창공에서 숨을 힘껏 들이켜듯 빌리 조엘이나 스티브 바이를 마시고 싶다. 브루노 마스나 무한궤도도 괜찮다. 딥 퍼플이나 너바나라면 더욱이 환영이다. 그대, 그 모습 그대로 내게 오라.



단 하나의 음악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하자. 물속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누구의 사운드이길 원하는가. 나는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 떠난 뒤’,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가 들려오면 좋겠다. ‘샴푸의 요정’이라 해도 좋다. 빛과 소금이라면 물속 세상은 그런대로 아름다울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라면, 거두절미 크라잉넛이다. 만일 사막의 끝이 보인다면 그때부터는 짐 홀의 ‘Concierto de Aranjuez’이다. 순서는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건 마치 내 이십 대와 삼십 대가 순서대로 흘러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다 당신이 만약 누구도 살지 않는(그렇다, 언제나 이런 질문은 끝에 나와야 하는 법) 무인도에 있다면 어쩔 텐가. 이 말은 결코 단 하나의 음악을 꼽으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내게 물어본다면 나는 남진이나 프랭크 시나트라, 신해철과 에디트 피아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에릭 클랩튼과 조지 해리슨을 고르겠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나는 단 하나의 음악을 고르는 상상을 한다. 막 손에 쥔 음악의 모양은 어떠할까. 어디라도, 어느 계절이라도 당신은 지금 그 음악의 모양 속에 있는 것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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