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축하해요, 샤넬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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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축하해요, 샤넬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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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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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새로운 향수가 세상에 나왔다. 향(香)과 병(甁)이 혁신적이었던 이 제품은 프랑스 여성의 향수 기호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곧바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샤넬 No. 5!

향수를 사용하는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향수를 쓰지 않는 사람도 샤넬 No. 5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샤넬 No. 5를 설명하는 수많은 광고 카피나 수사(修辭) 중에 에스프리는 역시 마릴린 먼로의 어록이다. 마릴린은 잠을 잘 때 잠옷을 입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잠자리에 들 때 무엇을 걸치고 자는가.

“샤넬 넘버 5.”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이뤄낸 혁신의 여정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여성 의류를 디자인한 샤넬은 어떻게 향수 개발에 뛰어들었을까. 전혀 다른 영역인데.

전쟁은 언제나 사회·문화적 격변을 결과한다. 100년, 200년이 걸리는 변화가 전쟁을 한번 겪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바뀐다. 1차세계대전 4년동안 일상적으로 죽음을 접한 여성들은 오랜 관행과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1차세계대전은 역설적으로 코코 샤넬(가브리엘 샤넬)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줬다. 샤넬은 남성 의상의 장점을 여성 의상에 결합해 새로운 패션을 탄생시켰다. 상의를 헐렁하게 디자인해 수백년간 여성을 옥죄었던 코르셋을 없애 버렸고, 발끝이 보이지 않던 치마의 길이를 줄여 발목까지 보이게 했다. 여성들에 패션으로 자유를 선물했다.

1차세계대전 동안 프랑스 땅 절반 이상이 전운에 휩싸였지만 지리적인 이유로 전쟁과 아무 상관 없이 평화와 풍요를 구가한 도시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비아리츠(Biarritz)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자연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 430㎞에 이르는 피레네 산맥이 대서양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바닷가 도시가 비아리츠다.

1차세계대전이 터지고 파리가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되자 프랑스 귀족과 부유층 상당수가 비아리츠로 피난을 떠난다. 이들 부유층 중에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황실 인사와 일부 귀족도 섞여 있었다. 샤넬은 이들을 겨냥해 부티크를 열었다. 샤넬은 이때 로마노프 왕조의 후손을 알게 된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1891~1942) 대공이다. 훤칠한 키에 미남인 드미트리 대공. 스물일곱 드미트리 대공은 공개 석상에서 언제나 깊은 우수에 잠긴 표정이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니콜라이 2세의 조카인 그는 어떻게 그 먼 비아리츠까지 갔을까.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은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황제는 기도와 주술로 혈우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시베리아 출신의 승려 라스푸틴을 믿고 그를 최측근으로 삼았다. 황제의 눈과 귀를 장악한 라스푸틴이 전횡을 일삼자 라스푸틴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진다.

여러 번 실패 끝에 결국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피살된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에 드미트리 대공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황제는 조카를 추방시키기로 결정한다. 드미트리 대공은 눈물을 머금고 조국을 떠나야 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11개월 전. 역사의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이때 추방되지 않았으면 그 역시 니콜라이 2세 가족처럼 비참한 운명을 맞았으리라.

전쟁이 끝난 1919년 드미트리 대공이 파리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재회한다. 서른여섯 샤넬은 스물여덟 드미트리와 사랑에 빠진다. 연인 보이 카펠을 교통사고로 잃고 나서 홀로 죽음을 되새김질하며 어둠의 나날을 보내던 샤넬은 드미트리와 사랑을 하며 비로소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두 사람이 동거한 기간은 2년여. 샤넬은 새로운 연인에게서 제정러시아 황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어느 것 하나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 샤넬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한 것은 황실에서 사용하는 향수 이야기였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말랐던 샤넬은 황실 전용 향수에 호기심이 폭발했다.

샤넬은 드미트리 대공을 통해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조향사(造香士) 에르네스 보(Ernest Beaux 1881~1961)를 만난다. 보는 샤넬에게 ‘행운’ 그 자체였다.

여기서 보에 대해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야만 한다.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조향사’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보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프랑스 사람이 왜 러시아에? 보의 조부모는 1840년대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이주했다. 당시 제정러시아는 문화예술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앞선 프랑스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다. 보의 형 에두아르가 러시아 최고 향수회사 랄레에 다니고 있었다. 향수, 화장품, 비누 등을 생산하는 랄레는 러시아 황실에 향수를 독점 공급하는 화장품 회사였다.

보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 회사의 비누생산 파트 연구실 도제로 들어간다. 프랑스 국적인 보는 군대 갈 나이가 되자 프랑스로 돌아가 2년간 의무복무를 한다. 1902년 러시아로 돌아와 회사에 복귀한 그는 본격적인 조향(造香) 수업을 받는다. 5년 과정을 수료한 그는 1907년 수석 조향사로 승진한다. 나이 스물여섯. 그는 수석 조향사로 제정러시아의 국가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기념 향수를 제조하는 일을 책임졌다. 대표적인 것이 1912년 보로디노 전투 100주년 기념행사다. 보로디노 전투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패퇴시킨 전투. 그는 ‘나폴레옹의 부케’라는 이름의 향수를 내놓았고, 이 상품은 대성공을 거둔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예비군인 그는 프랑스 육군에 배속된다. 전쟁은 4년간 지속되었고 종전과 함께 1919년 제대한다. 그는 볼셰비키가 장악한 러시아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화장품 회사는 강제로 폐쇄되었다. 파리에 정착한 그는 옛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하면서 새로운 향수 개발을 모색했다. 이때 드미트리 대공과 연결되었고, 드미트리가 그를 파리 패션계의 스타인 샤넬과 만나게 다리를 놓았다. 보와 샤넬은 1920년 여름 처음 만난다.

샤넬은 보를 통해 전혀 모르던 향수의 세계에 눈을 떴다. 향수의 신비로운 힘을 알게 되었다. 샤넬은 새로운 향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샤넬이 새로운 향수 개발에 뛰어들 때까지 프랑스의 향수는 장미, 치자, 재스민 등 여러 가지 꽃을 혼합한 식물성 향수가 전부였다. 이런 향수들은 향이 금방 식별되었을 뿐 아니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었다. 샤넬은 향기가 오래 지속되고 오묘하고 신비한 향수를 만들고 싶었고, 향수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충분했다. 제정러시아 출신의 최고 향수 기술자는 80가지 혼합물을 넣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샤넬은 새 향수를 ‘샤넬 No. 5’라고 명명했다‘(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예술인편, 162쪽)

샤넬은 5를 행운의 숫자로 여겼다. 그래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때는 언제나 날짜를 5월5일로 정했다. ‘샤넬 No. 5’로 정한 데는 조향사 보가 제시한 5가지 향수 중 다섯 번째 것을 선택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왜 5는 행운의 숫자로 인식되었을까. 숫자 5는 자연계에서 완전성을 뜻한다. 벌집은 오각형이고 식물의 꽃잎은 대부분 다섯 개다. 벚꽃부터 방울토마토 꽃까지.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도 각각 다섯개다.

‘새로운 향기를 담는 향수병도 역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디자인이었다. 향수병은 평행 육면체의 투명한 크리스털 병이었다. 그전까지 향수병은 여러 가지 꽃 장식으로 화려했던 반면 ‘샤넬 No. 5’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런 향수병 디자인은 모자에 장식을 없애고 의상을 입기 편하게 디자인한 샤넬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샤넬 No. 5’가 나오자 순식간에 다른 향수병들은 진부하게 보였다. 투명한 향수병은 그 안에 담긴 황금빛 액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세계 여성을 관능의 늪에 빠지게 한 샤넬 No. 5는 이렇게 탄생했다’(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예술인편, 163쪽)

샤넬은 혁신적인 향수를 다른 향수들처럼 백화점에 진열하지 않았다. 오로지 캉봉가 31번지 샤넬 매장에서만 판매했다. 이 향수는 샤넬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황금알을 낳은 향수로 샤넬은 캉봉가에 샤넬 제국을 쌓아올렸다. 프랑스가 향수에서 러시아를 뛰어넘어 마침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드미트리와의 사랑은 짧았지만 영원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융합을 낳았다. 프랑스의 자유와 러시아의 허영이 만나 사랑을 부르는 불멸의 향으로….

100주년 축하해요, 샤넬 No. 5.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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