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는 노동을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의 행위는 언제나 자발적이고 헌신적이다. 그 자발적인 행위는 숭고하고 거룩하다. 그는 소방대장으로서 해야 할 소명을 다했다. 자신의 소명이 된 노동에 매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녀)에게 그 노동은 다른 재화를 얻기 위해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노동은 책읽기와 글쓰기다. 나는 매일 이 두 가지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일과를 조정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마당과 집안, 특히 책상과 책장을 정돈한다. 소식은 독서와 작문을 위해 필수적이다. 누군가 당신은 왜 매일 책읽기와 글쓰기에 몰입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독서에 매진하는 이유는, 그 깨달은 바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거나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어제보다 좀 더 확장된 자아를 만들어, 개선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내가 글쓰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각을 정돈하여 나도 몰랐던 심오한 생각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숨겨진 나를 조금씩 알아 가는 과정이다. 나는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매진할 뿐이다. 우리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매진할 때, 자신이 하는 일에 자존감이 생기고 타인이 하는 일에 존경심이 생긴다.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자신이 소명처럼 여기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 명성 혹은 쾌락이라고 주장하는 대중이 있었다. 세네카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숙고를 통해 얻는 노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정은, 자신이 소명이라고 생각한 노동이며, 그 일을 매일 해나가는 인간은 행복이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능력이 혜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 타인이 보기에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나의 소명이 되면,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고 타인에게 감동이 된다.
세네카가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서른한 번째 편지의 다섯 번째 단락은 라틴어로 이렇게 시작한다.
‘게네로소스 아니모스 라보르 누트리트’. 이 문장을 번역하자면 이렇다. “노동은 숭고한 영혼에 자양분을 준다” 혹은 “노동은 숭고한 영혼의 근간이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 그 노동은 입과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고 나의 영혼을 숭고하고 자비롭게 만드는 근간이다. 내가 오늘 하는 노동은 나의 영혼을 숭고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나의 욕심과 욕망을 부추겨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가? 고 김동식 소방대장의 숭고한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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