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의 슬픔 그리고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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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슬픔 그리고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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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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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에 피아노를 치고, 4세에 바이올린을 켰으며 5세에 작곡을 시작한 음악 신동. 한 번 들으면 정확히 악보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타고난 실력으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유럽의 궁정을 중심으로 연주여행을 다녔다. 모차르트가 14살 때, 이탈리아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작곡가 알레그리의 성가곡 ‘미세레레’를 듣고 전부 외워 악보로 적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이 음악은 이 성당 외 다른 곳에서 연주되거나 악보가 유출 되는 것이 금지됐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이런 모차르트의 실력을 높이 사 벌을 내리는 대신 황금박차 훈장을 내린다. 그의 재능은 비교 불가했다.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악보에 적어 내려갔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곡을 완성했다. 그런 그의 음악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발랄하고 유쾌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슬픔은 있었을 터. 어린 나이에 연주여행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훗날 그의 건강상의 문제는 어릴 적 잦은 여행에서 기인했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연주생활은 고된 여정이었다. 또한 일반인과는 다른 천재성으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차르트와 관련된 연구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의 죽음의 원인에서부터 그의 변태적 행위에 대한 연구, 그리고 프리메이슨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추측과 이야기들. 천재의 재능에 비해 녹록하지 않았던 그의 삶.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연주하기 힘든 음악으로 그의 음악을 꼽는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음악에 담긴 본질적 슬픔 때문일지 모른다.

모차르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가 태어나기 전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 장 앙투앙 와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의 ‘피에로 질’이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피에로 질’은 한 광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질은 광대 옷을 입고 관객을 향해 서 있다.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보인다. 아니 체념한 듯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초월했을 수도 있다. 묘하고도 슬픈 표정의 질. 춤추고 노래하며 관객을 웃기는 광대의 숨겨진 얼굴. 이 모습을 보면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려진 쾌활하게 웃는 모차르트의 모습과 때로 힘겨워하던 그의 모습이 교차되는 것은 우연일까? 질의 모습 뒤로 모여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광대는 그들에게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 등을 돌리고 서 있다. 그 모습이 가슴 한 켠을 아리게 만든다.

와토는 1684년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태어났다. 1702년, 18살에 파리로 갔고 그곳에서 연극 무대 관련 그림을 그렸다. 1712년,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고 1717년 입회를 위해 ‘키테라 섬의 순례’라는 작품을 출품한다. 당시 프랑스는 바로크에서 로코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1715년, 루이 14세가 죽자 귀족들은 베르사이유를 떠나 파리로 돌아왔고 자신의 집을 궁전 장식 이상으로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들은 베르사이유를 장식했던 바로크 양식에서 벗어나 좀 더 가벼운 로코코 양식을 원했다.

와토의 ‘키테라 섬의 순례’는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키테라 섬은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의 성전이 있는 그리스의 섬이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엔 연인들의 밝고 경쾌한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적 ‘순례’, 그리고 에로스적 사랑을 한 데 묶은 이 그림은 전통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교화나 역사화, 신화에 근거를 둔 그림이 아니며 일상을 나타낸 그림도 아닌 이 주제에 대해 아카데미는 ‘페트 갈랑트’(아연화)라는 장르를 만들어 분류했다. 와토로 인해 전원에서 즐기는 귀족의 연회장면을 그린 ‘우아한 연회’를 뜻하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된 것이다. 이 그림은 그 어디에도 뿌리를 두지 않은 그림으로 마치 환상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유토피아. 이 그림이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와토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페트 갈랑트’라는 장르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그림을 그렸던 와토는 현실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게다가 병약한 몸에 늘 힘겨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아련한 슬픔이 느껴진다.

연극의 한 장면과도 같은 와토의 그림. 한편의 연극과도 같은 인간의 삶. 무대의 막이 오르고 내리듯 그렇게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살고 죽는 우리의 삶. 어떤 이의 것은 길고도 지루하고, 어떤 이의 것은 짧고도 화려하다. 공통된 것은 그 누구도 관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피에로 질’에 공감하는 것일 테니.

아름답고 화려한, 밝고 유쾌한 그림과 음악을 만들었던 와토와 모차르트.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본질적 슬픔.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는 말이 어울릴까?

모차르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심했던 1791년, ‘레퀴엠’을 의뢰 받는다. 레퀴엠은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을 뜻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이 곡은 그의 마지막 곡이자 자신의 진혼곡이 됐다. 그는 안타깝게도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하고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완성하게 된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리고 슬프다.

“높은 수준의 지능이나 상상력, 또는 그 둘이 합쳐져 천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 사랑, 사랑, 바로 그것이 천재의 영혼입니다” (모차르트)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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