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력의 통로로서의 형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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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협력의 통로로서의 형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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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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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아직 언감생심이지만 나중에라도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하나 있다. 몽나파르스역 남쪽에 있는 ‘서울광장(Place de Seoul)이다.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만 돌아보아도 시간이 빠듯하겠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서울 목동 한가운데 있는 ’파리공원‘을 가 본 사람이라면 왜 파리에 이런 곳이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각각 서로의 수도를 상징하는 장소를 조성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에 한국은 ’파리공원‘을, 프랑스는 ’서울광장‘을 조성한 것이다. 한국에서 프랑스의 삼색기를 형상화 한 파리공원을,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맛볼 수 있는 서울광장을 거닐 수 있다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도시가 국경을 넘어 상징적인 장소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지역 간 협력 선언이 부쩍 많아졌다. ‘XX동맹’과 같은 명칭을 붙이며 도시 간의 상생협력 협약을 맺었다는 뉴스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협약과 선언을 통해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시민들로서는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 당장 경주와 포항을 보아도 그렇다. 민간과 공공을 불문하고 여러 협력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형산강을 따라 긴밀히 연결된 두 도시이지만 그 연계성은 의외로 미약한 수준이다. 경주와 포항을 별개의 여행지로 생각하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을 지경이다.

이 두 도시는 사실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형산강 물길을 따라 예전부터 하나의 생활권으로 형성된 지역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연오랑세오녀로 상징되는 영일만 고대문명의 씨앗은 바로 이 형산강을 따라 내륙으로 옮아갔고, 거기서 최초의 통일왕국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역사의 휘몰이 가운데 문명은 돌고 돌아 제철산업이란 양태로 다시금 영일만 바닷가로 돌아오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 문명이란 어쩌면 형산강을 따라 오고 간 순환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형산강이 그저 하나의 ‘지방 하천’이 아닌 이유이고, 또 그 양단에 자리 잡은 경주와 포항의 관계가 범상하지 않은 이유이다.

약 십년 전 정부에서 ‘형산강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추진하는 와중에 ‘형산강 상생공원’ 사업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제안한 적이 있었다. 형산강 물줄기의 연속성을 살리면서 경주와 포항 간의 상생협력 관계를 도모하는데 있어 괜찮은 사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먼저는 파리공원과 서울광장처럼 서로의 명칭과 상징을 담은 두 개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대안으로, 하나의 공원을 만들되 두 도시의 경계에 걸치도록 하는 방안을 택하였다. 경계지역은 자연 경관은 물론 생태계 보존상태도 좋아 강변의 생태공원을 조성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곳에 지역 경계를 넘나드는 기다란 생태공원을 만듦으로써 형산강 생태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 간 상생협력의 물꼬도 트자는 의도였다.

정부로부터 좋은 사업으로 선정은 되었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계에 걸친’ 공원을 조성할만한 행정체계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요되는 재정을 지역 간에 분담하고 공동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근거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역 협력이라는 말은 좋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경험과 제도는 물론 의지도 부족한 것이 지방도시가 처한 현실임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십년이 지난 지금 그 부근에 갑자기 공원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본다. ‘상생협력’과는 무관하게 경주시 단독으로 조성된, 포항으로는 한 치도 넘어오지 않고 경주 쪽으로만 조성된 공원이다. 애초에 제안된 상생협력이나 형산강의 생태와는 무관한, 다만 트럭 기사들의 쉼터(?)가 아닐까 하는 공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생공원이 아니라 ‘상생협력이 왜 어려운가’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이처럼 서울과 파리도 가능한 상생협력이 정작 경계를 맞댄 경주와 포항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얽히고 강으로 연결된 두 지역 사이에도 그렇다면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지방자치가 지역별로 딴살림(?)을 잘 차리라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지역에 주어진 본연의 연결성을 살리면서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거기에 지방소멸 위기를 지나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한다. 도시재생, 행정통합, 그린뉴딜 등 지역의 변화를 위한 많은 키워드들이 있지만 경주와 포항, 포항과 경주의 경우에는 그 모든 키워드의 중심에 형산강이 흐르고 있음을 인식했으면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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