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수미를 만나봐도 좋을텐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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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수미를 만나봐도 좋을텐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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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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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세이수미의 ‘Where We Were Together’

한국에서 서프 록을
그러니까 세이수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몇몇 아티스트를 인터뷰할 계획이었는데, 세이수미는 리스트에 없었다. 그들의 노래를 흘러가듯 들은 적이 몇 번 있을 뿐이었다. 훗날 세이수미라는 밴드가 영국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고, 엘튼 존이 극찬했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다. 그 즈음 생긴 관심은 리액션에 의한 것이었지, 나 스스로는 그들의 음악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록 페스티벌에서 머리를 흔들며 밤을 불태우던 시절도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밴드 사운드에 마음을 내놓을 수 없는 나이가 된 건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정도였다. 볕이 쨍쨍한 날 어렵사리 꺼내어 재생한 록그룹이라곤 미스터빅이나 AC/DC정도가 다였다. 한국에서 서프 록을? 그런 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다수 한국 인디 뮤지션은 BTS처럼 만나기 힘든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공연장에 있고, 술집에도 있으며, 한적한 길거리나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들을 발견하면 다정한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합석해서 그 밤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술집에서, 어느 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몇몇 아티스트와 교류하던 지난날의 해프닝은 우연이 만들어 놓은 산물일 텐데, 지금의 나는 요행을 바라기엔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 아닌가. 게다가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단절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세이수미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이었다.

세이수미를 만나봐도 좋을텐데
나는 가깝게 지내는 후배 극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쟁이들과의 통화란 대부분 이런 종류다. 일상에 대한 토로와 지지부진함, 시니컬한 농담과 자조 섞인 웃음 같은. 그런데 하필 우리의 대화 사이로 극작가의 반려인이 이런 말을 던지는 게 아닌가.

세이수미를 만나봐도 좋을텐데
난데없이 언급된 한 밴드의 출현을 나는 계시처럼 여기며 그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길에서 흘려듣고, 차 안에서 라디오로 무심코 들었던 그 시기와는 다르게 보다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뒤쫓게 된 것이다.

한 밴드의 음악을, 게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건져 올린 앨범을 차근차근 듣는 일은 평범한 감상보다 더 아득한 감정을 전해준다. 내게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그랬고, ‘김일두’가 그러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행운이 벌어지길 바라지만 음악적 권태가 이어지던 날들이라면 그 인연은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다. 일상에 침투하는 기분 좋은 자극. 리듬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듯 미끄러지며 매혹적으로 반복된다. 과연, 이런 걸 서프 록이라 불렀지. 나의 감상은 사뭇 달라져 있다. 한국에서 서프 록을? 이 아니라, 한국의 서프 록이 스피커에서 넘실대고 있다. 그 바다는 가까운 부산 광안리. 그렇다. 여기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서프 록을 하겠는가.

파도와 같은 시간
나는 후배 극작가의 반려인의 지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케빈 베이컨 법칙처럼 우리 모두가 네 단계를 거치면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니 그들이 나를 만나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린 음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건 음악하는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오기다. 나는 이제 음악을 만들지 않고, 간혹 이렇게 앨범을 듣고 기록하는 일이 전부인데, 과연 내 얘기에 답을 해줄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보내듯 내 마음을 짧은 메시지에 실어 훨훨 날려 보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어떤 인터뷰인지 모르지만 나를 만나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거면 되었다 싶었다.

얼마 후면 나는 그들과 인터뷰를 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를 가장한 팬미팅일 수도 있다. 그냥 음악에 대한 감상을 전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둘러싸인 가벼운 술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건 음악적 성취나, 밴드의 향방이 아니다. 팀 이름의 의미나 작곡 작사의 방법, 영국 투어의 해프닝, 사회에 대한 분노, 정치적 성향,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아니다. 이 인터뷰는 아주 간소하게, 개인적으로, 사소하다 싶을 정도로 가볍게 이뤄질 것이다. 우린 여름의 어느 날 만나 서로의 이름을 나누고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거품처럼 사라질 파도와도 같은 시간을. 나는 벌써 그 날이 그리워지는 기분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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