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촌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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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촌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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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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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빌라촌 공실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촌과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비어가고 있다. 십여 세대가 살 수 있는 빌라에 불과 두어 세대만 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파트에만 다들 신경 쓰는 중 빌라촌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빌라’는 표현은 엉뚱하게 자리 잡은 경우이다. 법규상으로 다중, 다세대, 다가구 주택 등으로 구분된다지만 사람들은 그저 빌라 하나로 퉁쳐서 부르곤 한다. 하지만 원래 빌라(Villa)라 하면 유럽의 호사스러운 저택과 별장을 말한다. 장식과 조경이 그득하고, 다 쓰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방들이 있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저택들이 바로 빌라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우리나라에서 빌라라 함은 여러 세대가 사는 주택을 일컫는 표현으로 자리잡아버렸다. 게다가 화려한 주택이라는 원래 의미와는 전혀 딴판으로 아파트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차선의 주택 양식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빌라촌이 비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주거 환경 전반이 너무 답답하다. 상당수 빌라촌은 기존의 단독주택 부지에 5층까지 꽉 채워 건설한 곳이다. 게다가 2006년 이후 건축법이 완화되면서 주택 간격은 더 줄어들었다. 건물 사이 간격이 1-2미터에 불과하다 보니, 일조나 통풍, 소음 환경은 물론 사생활 차원에서도 좋을 리 없다.

아파트가 주종인 도시에서 빌라촌은 ‘자투리’인 경우가 많다. 고층아파트 위주의 도시에서 빌라촌은 졸지에 잉여 생활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편의시설, 교육환경 조성에 있어 제대로 혜택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범죄자들도 상대적으로 허술한 빌라촌을 집중공략(?)하곤 한다. 아파트 단지 건설이 빌라촌으로 범죄를 밀어내는, 일종의 부정적인 스필오버 효과랄까.

그나마 장점이라면 주택이 바로 도로를 접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도 큰 유익이 되지는 못한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1층의 주차장이다. 1층에 주차장을 두면 한 층을 더 지을 수 있는 법령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빌라 1층이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수시로 드나드는 차량 때문에 길이 끊겨 편안히 걸어가기 어렵다. 차량진입 경사로 때문에 보행자가 짝다리(?)로 걸어야 하는 불편도 크다. 드나드는 차량을 피해가며 경사진 보행로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를 가끔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쓰레기 처리문제는 또 어떤가. 길의 사각지대에는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분리도 되지 않은 쓰레기가 버려지고, 또 관청에서는 수거를 거부하면서 그저 방치된다. 결국 바람에 휘날리면서 여기저기로 다 흩어지곤 한다. 어쩌다 휴식을 위해 근처의 근린공원을 가보지만, 무릎 높이로 올라온 잡초와 여기 저기 흩어진 쓰레기를 보고는 내키지 않아 다시 걸음을 돌린다.

이상은 지금 지방도시 빌라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한마디로 ‘빌라촌의 비애’라고나 할까. 아파트에 비해 저렴한 주택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는 애들을 기분 좋게 키우며 살기 어렵다는, 결국은 아파트로 가야한다는 인식이 젊은 부부들에게도 만연하다. 아파트에 진입 못한 사람들이 잠시 거쳐 가는 ‘2등 주거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포항의 경우만 해도 상당수 빌라촌이 심각한 공실을 겪고 있다. 십여 세대가 살 수 있는 빌라 하나에 두세 세대가 채 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입주하고 싶은 사람들도 혹여 전세금을 떼일까 해서 들어가길 망설인다. 공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주택부족 문제, 주택 가격 급등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택은 아파트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지방의 상당수 빌라촌들은 오히려 빈 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지방도시의 주택문제는 좀 다르게 봐야하는 게 아닐까. 수도권이 아파트 공급물량이니, 임대주택, 공영주택을 이야기한다고 똑같이 따라갈 일이 아니란 것이다. 황량해져 가는 빌라촌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아파트를 늘려서 빌라촌을 비어가게 만든다면, 결국 아랫돌 빼어서 윗돌괴기와 무엇이 다를까. 그럼에도 여전히 신시가지 개발과 용도상향이 관심거리이고, 분양광고는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빌라촌의 비애를 좀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빌라촌 생활여건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만 있다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공급은 새로이 건설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기존 상품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도 충분히 공급의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빌라촌의 비애를 해소해서 살만한 주거지로 승격시켜주는 것은 주택공급과 주택가격 안정 모두에서 생각해볼만한 대안일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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