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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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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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북스에서 울려 퍼진 음악(1)


예술의 딜레마

내가 즐겨 찾는 몇몇 서점에서는 작가나 전문가를 초청하여 북토크를 연다거나 글쓰기 모임을 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로 독자들을 모으고 있다. 규모가 작은 독립 서점들이 SNS를 활용해서 취향을 공유하고, 책과 문화를 향유하는 일은 축소된 출판계에 활력이 되고 있다. 나는 이런 흐름 속에서 작가로, 때로는 관객으로 참여할 때가 있다. 마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를 열어준다는 듯 눈이 가고, 몸이 기울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책을 구입하는 전통적인 서점 기능에서 벗어나 대화를 나누는 소통 공간,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휴식 공간, 영화를 보거나 공연이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만 하다. 서점이 바뀌어간다는 건 책이라는 매개가, 나아가서는 작가라는 존재가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같은 흐름을 오래 전부터 기대해왔다. 과거 신비주의나 권위주의에 점철된 작가라는 유령을 보다 친숙한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이 시대가 가진 출판의 위기, 서점의 위기, 나아가 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대한 대책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다, 실은 줏대 없는 작가인 나를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나는 노래도 하고, 사진도 찍고, 방송도 하며, 심지어 그런 것들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폄하하거나, 숭고한 작가주의 정신을 비방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쨌거나 문학이 살아남는 일이 내게는 꽤 중요하고, 이는 서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문학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예술은 변화하고 있고, 변화해야만 한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세계의 중요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스테레오북스

내가 좋아하는 스테레오북스는 온천천에 위치한 독립 서점으로 음악 서적을 중점으로 취급하는 근래 보기 드문 서점이다. 영화 음악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경험(졸저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이 있는 나는 서점지기의 배려에 큰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콘서트도 열고 북토크도 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늘 애틋하다. 서점이 잘 되어야지 나 같은 글쟁이도 ‘작가’라고 불릴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턴테이블로 듣는 음악, LP의 즐거움’이라는 행사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다. 이미 내 눈앞에서 턴테이블이 뱅뱅 돌아가고 있고, 마법 같은 사운드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테레오북스로 향했다.

행사를 꾸려나갈 강사는 ‘안나푸르나’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님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출판사 대표님들도 꽤나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고취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꾸려온 장비를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스피커, 스탠드, 앰프, 케이블, 텐터이블, 그리고 수십 장의 LP를 직접 챙겨서 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대체 무슨 까닭으로 고가의 장비를 차에 싣고, (거리두기로 축소된) 10명의 관객을 만나러 그 긴 여행길에 오른다는 말인가. 나는 그의 태도를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소개나 배경 등은 생략한 채 곧장 LP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스테레오북스는 곧장 음악감상실로 바뀌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카트리지 바늘이 긁어내는 바이닐의 미약한 전류만이 나와 세상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음악을 들어본 아이처럼 내게 오는 모든 소리를 받아들였다. 점점 음악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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