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음악인 세상
  • 경북도민일보
온통 음악인 세상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1.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테레오북스에서 울려 퍼진 음악 (2)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당신의 피부를 위한 일

나무가 음악을 듣는다면, 책은 어떠한가. 당신이 음악을 듣는다면, 책은 어떠한가. 세상이 음악을 듣는다면, 책은 어떠한가. 나무도, 당신도, 세상도, 당연히 책도 음악을 듣는다. 어느 한적한 서점에 꽂힌 책은 드뷔시를 즐겨 들을 수도 있고, 도심 속 카페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은 유행하는 가요를 따라부를 정도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빽빽하게 꽂힌 책은 침묵의 선율을, 아니, 창밖에서 합창하는 새소리를 음악으로 여기고, 내 작업실의 책들은 그날 기분 따라 바뀌는 소설가의 선곡표에 난감한 노릇이라고 수군거리고 있을 게 뻔하다. 에이 설마, 라고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서가로 다가가 한 권의 책에 손을 뻗어보시길.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행위만으로도 증명된다.

책도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지 않는 책은 애초에 한 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빳빳한 질감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제 산 새 책을 막 넘기는 참에 첫 장에 베여 피를 봤다면, 그 책이 아직 리듬을 덜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과 함께 스피커 앞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시라. 이건 당신의 책과 이기도 하다.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닐거야

처음에 나는 스테레오북스에서 열린 ‘턴테이블로 듣는 음악, LP의 즐거움’이 나를 위한 행사라고 여겼다. 그래서 열 명이라는 선착순에 들기 위해 서둘러야 했고, 행사 당일에도 제일 앞 두 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서야 나는 그 행사는 바로 스테레오북스의 책을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책들을 위한 공연의 부속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자 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책에 리듬을 부여하기 위해서 고가의 장비를 챙겨온 안나푸르나 대표님이나, 독자를 만날 책들에 리듬을 실어나르기 위해 행사를 주관한 서점 대표님이나, 이거, 하나같이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우린 김 대표님의 안내에 따라서 재즈에서 출발해 시티팝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LP의 전류를 만끽했다. 여기에서 우리란 당연히 책과 나다. 우리는 어느 순간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고, 어느 지점에서는 가사를 음미했으며, 절정에서는 고개를 앞뒤로 까딱이기도 했다. 그러다 슬며시 뜬 눈을 마주쳤을 때 조금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나는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음악 덕분이었다. 책도 그렇다는 걸 알았다.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나만 좋아해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분명 아닌 것이다.



온통 음악인 세상

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테다. 책이 무슨 음악을 듣느냐고. 만에 하나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그게 도대체 나와는 무슨 상관이냐고. 나도 그 점이 궁금하다. 도대체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없겠느냐고. 이 작은 원고를 읽어주고, 바보 같은 소리라 말해주는 당신이 그리울 뿐이고, 그건 음악을 듣는 일과 같다는 걸 나는 소리 내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음악의 이치가 소리의 전달이라면, 발신자와 수신자의 우연보다 아름다운 게 어디 있을까. 내가 만나는 세계의 운율이, 심상이, 문장과 세계가 어떤 소리로 바뀔 수 있다면 그건 활자가 음악을 머금었기 때문으로, 그 가능성에 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싶은 것이다. 내가 과연 책보다 음악적인가. 내가 과연 책보다 리드미컬한 인간인가.

나는 책이 음악을,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많이 듣길 바란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사물과 사람이 음악을 한참 머금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음악이 필요한 이가 나타나면 손끝을 통해서라도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기를. 그렇게 멜로디가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다 보면 세상은 온통 음악이지 않을까. 세상은 온통 아름답지 않을까. 책이라면 기꺼이 그리해줄 것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