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사태…통신망 가치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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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사태…통신망 가치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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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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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 KT의 유무선 통신망이 89분가량 마비되면서 이를 이용하는 전국의 상점, 은행, 병원 등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KT는 처음에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이 원인이라고 했으나, 최종 조사결과는 라우팅(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라고 밝혔다. 좀 더 상세히 보면, KT 협력업체 직원이 부산에서 기업망 라우터를 교체하던 중 라우터에 잘못된 명령어가 입력되고 이것이 인근 라우터들에 전달되고 이어서 30초 만에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통신망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초 KT가 라우터 교체 작업을 야간에 하기로 계획했지만 실제로는 주간에 이뤄졌고, KT 본사의 작업 관리자 없이 협력사 직원들만 현장에 나갔다는 점에서 작업관리체계가 부실했다는 점과 작업자의 단순 실수로 인해 전국적인 피해가 벌어질 동안, KT는 아무런 사전검증을 거치지 않았고, 지역에서 발생한 오류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걸 차단할 시스템도 없었다는 점에서 기술적 문제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2018년 11월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는 피해 지역이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일부에 국한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과 해킹 공격이나 화재 등 외부적 요인 없이 사람들의 단순한 실수로도 전국 통신망이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점에 이번 사고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사람의 실수(human error)가 원인이지만 크게 보면 그동안 우리 기업과 정부가 통신망의 가치를 소홀히 한 측면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통신사가 인공지능, 클라우드, 콘텐츠, 커머스 등 비통신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 즉, 소위 ‘탈통신’ 전략을 취하면서 네트워크 사업자로서 가장 기본인 통신망의 안정적 운영을 후 순위에 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음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가 지속적으로 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하면서 네트워크 투자를 위한 재원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통신 3사와 SKB의 2020년 투자비는 8.27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였던 2019년 9.6조 원 대비 14%(1.33조 원) 감소하였다. 2021년 상반기 투자비는 2.8조 원으로,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하반기에 계획된 투자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였던 2020년 3.43조 원 대비 18%(0.63조 원) 감소하였다.

그 외 정부의 네트워크 정책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업무 계획은 데이터와 AI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민간 5G 네트워크 투자 촉진을 위한 세액공제 확대와 6G 핵심기술 개발 내용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정부는 5G 등에 있어 세계 최초와 최고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업계와 국민의 네트워크 수요에 대한 충분한 파악 없이 공급만을 중시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기존 네트워크의 유지, 관리에 대한 내실 있는 점검도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네트워크 인프라 확충과 고도화는 정부의 결단력 있는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찍이 한국통신을 민영화하고 여러 민간사업자와 경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통신망 구축 경쟁을 유도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시장형성 초기부터 가입자망 공동활용 즉, 망 세분화(Local Loop Unbundling)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한국은 초기에는 설비기반 경쟁을 도입하고 난 후 성장단계에 접어들어 망 세분화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초기 단계에서 사업자 간 설비기반 경쟁을 통해 전국적으로 촘촘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유선통신, 이동통신 등 타 통신서비스와는 달리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는 부가통신역무로 분류하여 요금 규제를 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사업자들은 정액제에 기초한 다양한 상품과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런 조치들이 초고속가입자의 증가, 투자재원의 증가, 투자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이런 정책을 통해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 게임사는 물론 단말기와 장비에 있어서도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만, 현재 통신사는 유무선 통신시장이 포화되면서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데, 아직 마땅한 추가 수익원 발굴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사고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통신망은 국가사회의 기본 인프라로서 한치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분야라는 점과 기술적 안전 조치 외에 관리적 안전 조치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통신망의 가치를 재조명할 때가 되었다. 통신망에 대한 지속가능한 투자와 관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통신망에 대한 안전 조치는 이중 삼중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고 정부와 통신사가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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