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 대란’을 넘는 無名의 시민들
  • 모용복선임기자
‘요소 대란’을 넘는 無名의 시민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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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덮친 요소수 대란
클린디젤 정책에 경유차 급증
정부 미숙한 대응이 사태키워
중국 일변도 경제구조 성찰과
근본적해결 위해 지혜 모아야
소방서에 요소수 기부 줄이어
이름없는 시민들 조용한 선행
한민족 국난 극복 원동력으로
모용복 선임기자.
예전 농촌에선 흔하디흔한 게 요소비료였다. 농사철만 되면 조합에서 타온 요소비료가 집집마다 수북이 쌓이곤 했다. 하얀 요소비료를 양철통에 담아 모 이랑 사이를 다니며 흩뿌리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요소비료를 구하지 못해 시금치 등 겨울 농작물 재배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한다. 농협 창고가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요소비료는 농작물 생장에 필수적인 질소를 공급하는데, 질소가 부족해지면 농작물은 생육이 저하되고 잎이 마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바야흐로 ‘요소 대란’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주로 농업용, 산업용, 경유(디젤) 차량용으로 쓰이는 요소는 경제성 때문에 2010년대 초부터 국내생산이 중단되고 대부분 중국 내 석탄에서 생산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올 들어 석탄이 부족해지자 중국 정부가 석탄과 더불어 요소 등 석탄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물질의 생산과 수출을 통제했다. 이로 인해 요소 수입량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던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요소 품귀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것은 디젤 차량이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판매하는 디젤 차량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돼 있다. 이 장치는 질소산화물을 인체에 무해한 질소 가스와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요소수다. 질소산화물 저감장치가 장착된 디젤 차량은 요소수가 떨어지면 시동이 걸리지 않고, 운행 중 요소수가 고갈되면 운행이 정지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요소수 공급난이 심화되면 대부분 디젤차량인 화물차 운행중단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 중인 화물차 중 SCR을 장착한 차량 비중은 60% 정도다. 만약 최악 상황시 전체 디젤 화물차 330만 대 중 200만대 가량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요소수 대란 피해가 큰 이유는 2009년부터 시행된 ‘클린 디젤’ 정책이 한몫을 했다. 당시 유럽에서 휘발유 차량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고 연료 효율이 높은 경유(디젤) 차량을 늘리자는 ‘클린 디젤’ 정책이 펼쳐졌고, 우리도 2009년부터 이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연비 좋고 환경오염도 적은 경유차 구입이 급증하면서 지금과 같은 사태를 빚게 된 것이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사태를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중국과 호주 양국 간 갈등이 요소수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을 미리 살피지 못했고, 수출 중단이 시작됐던 지난달 중순부터 도입 다변화 등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또한 요소수 대란 사태 발생 이후에도 별다른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마냥 정부만 탓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기업, 민간이 서로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동안 중국에 절대적으로 기대온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우리에게 언제 시련이 없을 때가 있었던가. 그 때마다 한민족은 굳건한 의지와 대동단결로 국난을 극복해냈다. 일제강점기 36년이 그랬고 동존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그러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민주주의를 꽃 피웠으며, 70여년 만에 1인당 국민총소득(GNP) 3만 달러를 돌파하며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번 요소수 대란에도 우리 국민의 국난극복 정신이 여지없이 발현되고 있다. 요소수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경북지역 소방서에 요소수 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7일과 8일 문경소방서 점촌119안전센터 출입구에 익명의 기부자가 요소수 10여 통을 놓고 사라졌으며, 8일 칠곡소방서 금산119안전센터에도 한 시민이 요소수 3통을 몰래 놓고 갔다. 소방차와 구급차 운용에 지장이 생길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용한 선행은 큰 울림이 되어 전 국민 속으로 확산해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들의 거룩한 선행을 보며 아직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고 숭고한 맥박이 뛰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새벽 찬서리을 맞으며 소방서를 찾은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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