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자” 말과 행동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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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자” 말과 행동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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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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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지구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듯,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모인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다급한 음성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기후변화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탄소배출을 더 많이 더 빨리 줄여야 한다고.

“자정 1분 전이다.” 개최국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개회사 말문을 열며 목청을 높였다.

“비상 모드로 갈 때다.” 유엔 수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세계 197개 국을 향해 행동을 촉구했다.

수만 명의 환경활동가들이 ‘탄소를 줄이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글래스고 시내에서 데모를 벌였다.

제2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가 열나흘간의 토론과 협상을 끝내고 지난 13일 폐막했다. 회기를 하루 연장하며 막바지 협상을 벌여 ‘글래스고 기후합의(Glasgow Climate Pact)’를 만들어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모디 인도총리, 문재인 한국 대통령 등 100여 나라 정상들이 참석했고, 197개국 대표들이 2주간 협상(10월31일~11월13일)을 벌여 도출해낸 성과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중국과 러시아 대표들도 협상에 참여하여 자기네 나라 입장을 합의문에 반영하려고 설전을 벌였다.

‘글래스고 기후 합의문’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정신과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더욱 진전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것이 2015년 체결한 파리협정이며, 이를 위해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지난 5년 동안 나온 지표를 검토해서 탄소배출을 더 빨리 줄여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중간단계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 감축노력을 서둘자는 방향을 담은 것이 글래스고 기후 합의다.

기후 합의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석탄사용을 제한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기후 관련 국제협정에 ‘석탄’이란 말을 넣은 게 처음이다. 석탄은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탄소덩어리다. 처음에 EU 국가들은 석탄사용 중단(phase out)이란 말을 넣으려고 했으나, 인도와 중국이 이에 반대했다. 특히 인도의 반발이 완강해서 협상이 하루 늦어졌다. 인도의 주장에 따라 감축(phase down)이란 단어로 합의 문구를 고쳤다. 시간표와 감축 방안이 없는 선언적 규정인데도 모든 나라가 석탄을 감축대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재정이 취약한 개도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할 수 있게 재정 지원을 늘리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합의 내용은 2019년을 기준으로 2025년까지 선진국들이 지원액을 2배 더 모으기로 한 것이다. 원래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에서 2020년까지 매년 선진국들이 1000억 달러를 모아 지원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약속하고도 돈 내는 것에 인색했다. 이번 COP26에서 평가한 것을 보면 2023년에 가서야 1000억 달러 목표달성이 겨우 가능해질 전망이다. 합의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Loss & Damadge) 보상 문제를 포함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소위 경제규모가 큰 나라의 모임으로 알려진 G-20 국가들이 탄소배출량은 세계 전체의 80%다, 산업혁명 이후 누적 배출량을 감안하면 서방 선진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일어나는 기후변화로 개도국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개도국은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도국으로 하여금 화석연료를 쓰지 못하게 제한한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되고 협조를 얻을 수가 없다.

이외에도 상징적 의미가 있는 합의가 이번 글래스고 COP26에서 이루어졌다. 2030년까지 메탄가스를 30% 줄이기로 합의했다. 메탄가스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과 농업분야에서 대량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적지만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80배나 된다. 또 100여개 국가가 2030년까지 산림 훼손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것도 성과다. 산림은 바다와 더불어 중요한 탄소흡수원이다. 이 합의에 참여한 나라는 브라질, 러시아, 중국, 미국 등으로 이들 국가의 산림면적을 합치면 지구 산림면적의 85%에 이른다.
탄소배출 규제와 관련해서 파리협정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배출권 거래와 탄소시장 활성화 방안이었다. 이번 협상에서 탄소감축의 이중계산을 피하고 타국에서 벌인 조림사업 등 배출저감 사업에 대한 폭넓은 배출권 인정 등이 합의되었다.

‘COP26’에서 미국과 중국의 번개합의‘가 있었다. 양국이 향후 10년 동안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더 노력한다는 선언적 합의다. 이 협상에서 메탄가스 배출감축 합의가 있었고, 중국은 2026년부터 석탄사용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탄소배출 2대 국가인 중국(39%)과 미국(14%)의 합의가 글래스고 합의 도출에 주는 상징성은 큰 것 같다.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시진핑 중국주석의 15일 화상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의제가 되었다.

글래스고 기후 합의에 대한 세계 언론의 평가는 엇갈린다. 부정적인 관점은 이번 합의가 석탄사용 제한 규정 등에서 보듯이 구체적 행동을 강제하는 시간표가 빠진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지금까지 망설여 온 많은 국가들이 2030년까지 중간 탄소감축 목표를 크게 올려 유엔에 제출했다. 또 세계 3위 탄소배출국인 인도의 모디 총리가 207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도 이제 어느 국가도 기후위기를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합의문의 앞 부분에 당사국들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배출감축목표를 상향해서 2022년 당사국총회에서 또 만나자는 내용이 들어갔다. 원래 파리협정 이행을 5년 단위로 점검하기로 했으나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긴급함을 반영한 것이다.

스웨덴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글래스고에서 “어른들은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라”고 외쳤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개도국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글래스고 기후회의에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내년 5월 청와대를 떠난다. 단기적 국제적 흐름은 보았으나 멀리 내다보며 그 많은 탄소를 어떻게 줄일지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 짐은 100여 일 후 차기 대통령 당선인에게 넘어간다.
김수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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