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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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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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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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인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생의 막을 내렸다. 당시 아테네의 사회는 혼란했고, 정치와 사회는 부패하고 타락했다. 시민들이 올바른 의식을 지녀야 나라가 융성할 수 있음을 일찍이 깨치고 있었던 소크라테스는 30년 동안 매일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가르쳤다. 아테네의 무너진 양심을 회복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인격을 각성시키고자 군중을 향해 호소하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민중은 그를 고소하여 법정에 세웠다. 죄목은 아테네가 믿는 신을 숭배하지 않았으며, 시대에 배치되는 논리로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두 가지였다. 일평생 진리와 정의를 추구한 위대한 철학자는 무지하고 우매하며 악의적인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로부터 60년 후,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작년 여름, 은둔의 노 가수가 거친 백발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형형한 눈빛으로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를 구성지게 부르자 국민은 열광했다. 특히 기성세대가 그랬다. 무언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짐작된다. 무엇을 보고 듣기에 주변의 많은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이러다 우리나라가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직감적인 위기의식 때문이란다. 그럼 왜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까. 지금 우리 눈앞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중요한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는 ‘국민분열’이다. 현 정권 초기엔 이렇게 생각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상대를 완전히 밟아버릴 태세다. 누가 이렇게 갈라놓았나.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극렬하게 심화하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급기야 정권 말기에 이르자 무조건 경멸하고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와 B가 주장이 다르면 서로 융합시켜 C라는 새로운 발전적 대안이 도출되도록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고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여당은 정반대의 행보를 취했다. 뚜렷한 국가비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위기에 대한 대안이나 전망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미디어를 통해 과거의 원한을 동원하고, 불신과 불만의 프레임을 짜서 반대세력을 적대세력으로 몰아붙인 게 전부였다. 지금의 번영도 기성세대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며 인권탄압과 착취의 산물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굶주림 속에 피땀 흘리며 국가번영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온 세대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부정되고 적폐로 내몰려 청산의 대상이 되었는데 반감을 품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으랴.

두 번째는 ‘신뢰성 상실’이다. 국민 대다수는 정치인도, 정부도, 사법부도, 언론도 믿지 않는다. 때문에 뉴스도 보지 않는다. 편향되거나 왜곡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성향의 유튜브로만 몰려든다. 정치권이야 속성이 그렇다 치더라도 편향된 언론은 자유민주주의의 심각한 해악이다. 이게 언론 자체의 비양심 때문일까. 결코, 아니다. 현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빠른 속도로 언론을 장악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불리한 보도를 하지 못하게 협박하는 저돌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공영방송사 사장이나 주요 요직에 같은 성향의 사람들로 모조리 채워 넣었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편들어주는 사람들을 심어놓으면 만사오케이라는 것을 간파하여 가장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공영방송이 편파방송을 한다고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도 매한가지다. 법의 적용이나 판결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믿지 못할 세상이라고 간주한다.

세 번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장된 집회·결사의 억압’이다. 정권의 눈 밖에 난 단체에 갑자기 지원을 끊어버리거나, 법을 제정하여 행동을 제약했다. 탈북민이 만든 대북단체가 받은 핍박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 정권에서 자유와 인권이 신장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과거처럼 반정부 집회 인파에 물대포를 쏘거나 최루탄을 발사하지는 않는다. 방망이를 든 전투경찰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그래서 인권이 신장되고, 더 자유로워졌다는 아둔한 말은 하지 마라. 집회와 투쟁의 숱한 이력을 가진 운동권 세력은 한 차원 높은 방법을 사용했다. 기발한 핑계를 대어 반정부집회를 허용하지 않거나, 엄청난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물샐틈없이 차 벽을 세워 집회 자체를 원천차단해 버렸다. 한마디로 국민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직접 피부로 못 느낄 뿐, 국가조직을 모조리 장악하여 말단 하부조직까지 파급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의의 변질 내지 상실’이다.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공통된 한가지가 있다. 한 국가나 한 문명이 붕괴하거나 멸망하는 주된 요인이 바로 ‘정의와 도덕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586운동 권이 주축을 이룬 여당은 오만하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도 자신들의 논리대로 규정한다. 법의 해석은 자신들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상대에겐 냉혹하다. 그들은 달콤한 언어로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선사하겠다며 국민의 귓전에 끊임없이 속삭인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보편적 상식은 파괴되고, 공정은 지엽적이고 편파적이어서 국민은 모든 게 어그러진 부조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데도 경제번영을 이루겠다고? 웃기지 마라. 정의가 바로 서야 경제도 살고, 국민화합도 이룰 수 있다. 산비탈이 무너지면 그 비탈에 서 있던 집도 따라 무너지듯, 정의가 붕괴한 곳에 번영은 없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가장 주된 요인도 정의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사는 게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바로 사는 게 중요하다. 바로 살지 않으면 잘살 수도 없다.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개인도 국가도 결국엔 쇠망하고 만다. 정의와 상식과 원칙이 사라지면 부수적인 모든 것도 소멸하는 것을 수천 년의 역사에서 무수히 보지 않았던가. 지금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그 길로 접어든 것 같다. 아~~테스형 이 나라를 어떡하면 되나요.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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