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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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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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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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리마스터링 앨범이 출시되는 LP 시장을 엿보며
LP 시장

요즘 은 다채롭게 확장되고 있다. 대중이 기대하는 유명 뮤지션이 새 앨범을 한정판 LP로도 소량 제작하여 애호가들의 수집욕구를 자극하는가 하면, 오래전 절판된 스테디샐러 앨범이 리마스터링되어 세상에 나오기도 한다. 조금 더 진화한 사운드로 과거의 음악을 듣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제아무리 유명했던 앨범이라 해도 품질과 음질을 개선했다고 해서 재빠르게 휘발되는 현시대의 대중문화에 적절히 스밀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잊혀진, 혹은 잊히면 안 되는 가수를 초청하여 그들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거나 새롭게 재현하기도 한다. 후배 가수들이 바치는 헌사에 눈시울을 붉히는 연로한 가수를 보면 나는 인생의 깊은 슬픔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사람은 죽어 사라질지 모르나 음악은, 그(그녀)가 부른 노래는 불멸의 존재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나 유령의 형태로 남은 예술작품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 외롭게 보일 때도 있다.



음악의 재탄생

음악(혹은 노래)에도 영혼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리마스터링에 있어서 중요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 음악에게, 다시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는지 정중히 묻는(확인하는) 절차가 그것이다. 아티스트의 결정과는 조금은 다른, 작품 자체를 향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 질문은 아티스트의 권한이기도 하겠지만. 이는 저작권이나, 윤리적인 문제를 벗어난 작품의 존재론적 물음이기도 하다. 냉동과 해동의 기술이 끝 간 데 없이 닿아 인류가 영생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해도, 시기를 잘못 선택하면 다시 깨어난 냉동인간의 삶은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리마스터링 된 음악이 무작정 좋은 일인가 하는 의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그 음악을 사랑하는 팬의 입장이라면 더 고심해볼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의 재탄생을 축하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음악이 과거에 누렸던 운명과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인데, 그 진보의 흐름 속에 과거의 콘텐츠를 재현하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과정 자체를 고민하는 일이 음악의 재탄생에는 제법 중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된 것인지요.

특히 LP의 세계에서만큼은 이 같은 질문이 유효해 보인다. 어렵사리 구한 앨범의 판을 벗기고, 닦고,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려두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감각하길 요구하는 까닭으로, LP가 세상에 살아남은 이유가 음질에 대한 체험을 넘어선, 오래전부터 내려온 음악듣기의 행동양식 바로 그 자체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이 고민은 출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절판해야했던 나의 첫 책(<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 2014)에 대한 상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판매 부수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 책이 새로운 종이와 형식과 포맷을 가진 채 다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얻는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런 날이 온다면 책에게 오래 묵혀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다시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된 것인지요.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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