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왜 돼지고기를 금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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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왜 돼지고기를 금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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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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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가리켜 성인(聖人)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에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성인은 살아생전보다 죽은 뒤에 칭송받는 인물이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전파된 축제일들은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성인(Saint)과 연관이 깊다.

돼지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고 나서 인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으레 삶은 돼지머리를 모셔놓고 고사(告祀)를 지낸다. 아무리 미신이라 뭐라 해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오랜 관습이다. 돼지고기 없는 식생활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삼겹살, 순댓국, 돼지보쌈, 제육볶음, 돼지족발, 동파육, 하몽, 슈바이첸학셀….
넷플릭스 영화로도 나온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 소설의 배경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된 건지(guernsey)섬이다. 독일군은 건지섬의 돼지들을 모조리 징발해 대륙의 독일군에게 식량으로 보낸다. 섬에서 돼지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은 심각한 동물성 단백질결핍에 시달린다. 그때 한 농가에서 몰래 돼지 한 마리를 숨겨 키운다. 친한 사람들끼리 비밀리에 그 집에 모여 돼지 바비큐 파티를 연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에 나치 순찰대와 마주친다. 차마 돼지고기 파티에서 오는 길이라고는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엉겁결에 나온 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희생 위에서 생존을 이어온 존재다. 동물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사람이다. 인간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에서 돼지만큼 기여도가 높은 동물이 있을까.

3월1일은 돼지의 날이다. 피그 데이(Pig Day).

‘돼지의 날’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살다 보니 별별 기념일이 다 있다, 빼빼로 데이처럼 무슨 장삿속으로 만들어낸 것 아니냐.

3월1일, ‘돼지의 날’은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돼지의 가치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1972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만들어졌다. 양돈업이 주요 산업의 하나인 미국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피그 데이’가 조금씩 확산되는 중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돼지! 돼지가 인간 곁으로 와 가축이 된 것은 1만4000년 전이다.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동물이 돼지건만 우리는 돼지를 비하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할랄(Halal)의 표적, 돼지고기

이슬람 문명권에서 돼지는 극혐의 대상이다.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죄악(罪惡)이다. 과연 이슬람의 돼지 금기는 타당한 이유가 있나?

이슬람 율법에 허용된 음식물·식자재의 총칭을 할랄(Halal)이라고 한다. 할랄은 그들만의 도축방법으로 도축한 육류를 지칭하기도 한다. 서울의 이슬람 거리인 이태원 우사단로 10길의 식당이나 식료품 가게 유리창에는 예외 없이 ‘할랄’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심지어 한국식료품 가게나 한국식당에도 ‘할랄’을 강조한다. 이태원 대로변에는 아예 식당 이름을 ‘할랄 가이스’(Halal Guys)라고 한 곳도 있다.

육류 중에서 할랄은 양, 닭, 소만 해당한다. 돼지고기는 술과 함께 금기인 하람(Haram)이다. 이슬람 율법은 왜 돼지고기를 금기(禁忌)로 묶었을까.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으면 무슨 부작용이라도 생기는 유전자를 가졌다는 말인가.

이슬람교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슬람교는 612년 아라비아 사막에서 시작됐다. 651년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이슬람교는 비로소 사막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한다.

이슬람 문명권은 북아프리카·사하라사막부터 아라비아반도·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광대하다.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이슬람권이다. 북아프리카 서쪽 끝의 모로코부터 중앙아시아 동쪽의 우즈베키스탄까지 이슬람 국가들이 터 잡고 있는 드넓은 지역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두꺼운 띠처럼 연결된 이 지역은 사막과 산악 지역이 많은 척박한 건조 기후대다.

동남아를 제외한 이슬람 문명권은 물(水)의 관점에서 보면, 물이 귀한 지역이다. 물이 부족하면 농산물이 풍족할 수가 없다. 커피는 기독교 세계로 건너가기 전 오랜 세월 이슬람 세계의 기호식품이었다.

터키와 같은 이슬람국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본 이들은 안다. (관광객이 드나들지 않는 카페에서) 한국인이 애정하는 아메리카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에스프레소잔 만한 크기의 커피잔에 커피 가루가 으지직거릴 정도로 되직한 커피를 내놓는다. 터키 커피는 한약처럼 쓰다. 커피는 마셔야겠는데 물을 아껴야 하니 진하게 커피를 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고향 집 마당 구석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나는 수년간 남은 음식물을 돼지밥으로 갖다주면서 돼지가 커가는 걸 지켜보았다. 돼지가 더럽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돼지는 의외로 청결한 동물이다. 돼지는 서늘하고 축축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항상 물이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돼지는 인간처럼 잡식성이다. 돼지는 개처럼 탄수화물을 잘 소화시킨다. 개와 돼지가 야생에서 가축화된 지 가장 오래된 동물 1·2위인 이유다. 돼지는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물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남은 음식물을 한데 섞어놓은 것을 가리켜 꿀꿀이죽이라고 한다.

할랄로 지정된 양과 소는 초식성(草食性)이다. 또한 양·소·염소는 방목이 가능한 반추동물이다. 소의 주식인 여물은 말린 짚이다. 수분을 증발시킨 섬유질이다. 소는 되새김질로 섬유질을 소화시킨다. 반추동물은 아니지만 닭은 똥집으로 불리는 모래주머니로 삼킨 곡물을 소화시킨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양, 닭, 소는 인간과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돼지는 방목이 불가능하다. 사람 손길이 많이 간다. 돼지는 인간과 탄수화물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 건조한 사막지대에 주로 살던 이슬람교도에게 양돈(養豚)은 환경적으로 불리했다. 투입되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너무 낮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럴 때 그 대상을 아예 ‘먹지 못하는 것’으로 규정하면 속이 편해진다. 결국 이슬람교는 돼지를 금기로 묶는 교리를 만들기에 이른다.

프로이트와 해리스의 명쾌한 통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년의 저서 ‘토템과 터부’에서 여러 문명권에서 터부가 생성되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밝혀냈다. 권력을 쥔 지배 집단이 한쪽을 터부시함으로써 대립하는 욕망의 충돌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종교적 터부로 묶으면서 무슬림의 돼지고기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 마빈 해리스는 이슬람의 돼지고기 터부를 프로이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분석한다. ‘비용-이익 관계’라는 분석 틀을 사용한다. 사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동물성 단백질의 양(量)이다.

“동유럽 근방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을 사육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 왜냐하면 돼지는 인공적으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물이 있는 웅덩이를 만들어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주어야 하고, 곡식과 같이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음식들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유럽 근방은 이슬람 문명권의 북방 한계와 겹친다.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돼지를 키우고 싶어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여러 문명권의 식문화와 관련된 금기들은 그 연원을 파고들면 기후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 문화적·종교적 관습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공동체의 음식문화가 오랜 세월을 전승되면 그것은 역사를 넘어 DNA가 된다.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종교선택권이 없다. 그와 함께 그들은 어려서부터 돼지고기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세뇌·학습된다. 무슬림에게 돼지고기는 곧 나쁜 음식의 대명사다. 이슬람권의 중국식당에서도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가 없다.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1942~2016)는 1964년까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그가 영어 이름을 사용할 때는 돼지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그러나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이슬람식 이름 무하마드 알리를 쓰고부터는 교리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난삼아 무슬림에게 일부러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게 하고 나중에 이를 알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돼지고기”라는 소릴 듣는 순간 무슬림은 얼굴이 노래지고 경기를 일으킨다. 물론 ‘돼지고기’ 소리를 안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겠지만. 반복 학습과 세뇌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카타르월드컵 최종 예선이 한창이다. 한국과 일본이 카타르행(行) 티켓을 따려면 이슬람 벽을 넘어야 한다. 아시아 축구 최강은 피파(FIFA) 랭킹 22위 이란이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에서 여성들은 오랜 세월 축구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종교적 이유에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부분적으로 허용한 게 5년도 되지 않았다. 여성의 축구장 입장 불가를 교리로 만들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

제발, 돼지를 욕하지 마시라. 돼지가 무슨 해를 끼친 적이 있나? 돼지처럼 고마운 동물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러나. 돼지를 탐욕의 상징으로 매도하지 말라. 돼지는 자기 배만 부르면 더는 탐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그러지 않는다.

삼겹살을 구울 때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나는 침을 꼴깍거린다. 삼겹살을 소울 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사람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삼겹살을 먹어줘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칼칼한 돼지 김치찌개를 부른다. 김치찌개에는 역시 두툼하게 썬 목살이 들어가야 제맛이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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