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만두가 생략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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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만두가 생략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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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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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과 대한 사이 몹시 추운 날이면 거실에 모여앉아 만두를 빚었다. 잘게 썬 김치와 소와 돼지의 비율을 반반으로 치댄 고기반죽을 섞어 으깬 두부와 숙주를 넣고 소를 만들었다. 얇게 편 밀가루 반죽을 스텐레스 밥공기로 꾹 눌러 만든 만두피에 소를 듬뿍 담았다.

만두들이 커다란 사각 쟁반 위에 올라앉으면 엄마의 잰 손길 한 번에 찜통대기조로 대오를 정렬한다. 만두가 쪄지는 동안 참기름 두 방울과 고춧가루 탁 뿌린 간장종지가 상에 놓였다. 우리는 새색시 행주치마처럼 희디흰 만두를 입 안 가득 넣고 뜨거운 김을 내며 먹었다. 만두는 그렇게 먹어야 맛있다. 입이 미어지도록 꽉 차게, 무구한 흰 김을 내면서, 목젖이 아리도록 뜨겁고 부드러운 것을 씹다가 여지없이 삼킨다.

바람이 창을 때리는 한 겨울의 복판에서 나아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섣달 또는 정월 어디쯤에 먹는다. 내게 만두는 후회와 주저로 갈팡질팡하는 해넘이에 기세를 몰아 먹는 맛이다.

코로나로 다 모이기도 어려우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만두를 생략하자는 엄마 말씀에 우리는 대체로 찬성했다. ‘대체로’인 건 아쉬움 때문이다. 사실 몇 해 거르기도 했고 설이 지난 뒤에도 길게 남은 겨울밤을 위해 적은 양을 만들기도 했다. 재료의 생략도 흔했다. 어떤 때는 김치가 생략되고 어떤 때는 숙주 대신 부추나 계란지단으로 선수가 교체되기도 했다. 올해도 만두가 생략됐어. 생략되는 게 너무 많은 현실에서 나의 만두까지 생략되다니.

알다시피 주변 환경과 상보하며 동화하는 게 지구상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고래는 물에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생략했고 영장류는 두발로 서면서 꼬리를 몸속으로 말았다. 천적이 없어 날개가 무용해진 도도새도 있다. 퇴화 같지만 진화다. 진화는 적응이다. 나는 면을 좁혀 선을 만들고 선을 줄여 점을 찍어가며 생략된 공백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노릇 이런 구닥다리 가치들이 황량함을 만져줄 것이다. 비대면의 일상화, 생략의 일상화가 습성이 되면 전두엽이 작아지지 않을까 공상하다가 어려운 문제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나를 좋아하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걸 위해 어떤 노력을 했지? 같은, 오늘을 사는 데 1도 도움되지 않으나 5년 뒤에 뼈아플 물음들. 귀찮아서 외면하면 나중에 볼썽사나운 얼룩을 남기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차저차해서, 만두 좀 생략됐다고 내가 쩨쩨하게 구는 건 다 추억의 맛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요란한 새해가 시작됐다. 일단 올해는 따뜻한 건 오래 기억하는, 입 속의 만두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안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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