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農'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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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農'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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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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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농사, 도시와 농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라 생각했다. 곳곳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대부분의 길은 아스팔트로 도배됐다.

그나마 약간의 흙이 있는 곳은 가로수가 심어져 도시와 농사는 서로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바라보는 어색한 조합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기회에 ‘한새봉 개구리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곡동 일대는 1996년 주거단지 조성을 위한 택지개발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큰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샘은 사라지고 여물봉과 농토도 없어지고, 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도 사라졌다. 한새봉에 남아있는 네 마지기의 천수답(개구리논)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이 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2008년 논의 주인이었던 노현채 농부도 세상을 떠나며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한새봉숲사랑이’ 회원들은 일곡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생태적 공간인 한새봉과 개구리논을 꼭 지키고 싶었다. 개구리논을 지키기 위해서는 논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그들은 논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한새봉숲사랑이,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한살림생협, 틔움복지재단이 참여하면서 ‘두레’를 만들어 마을주민들과 공동으로 논농사를 지어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후 2009년부터 한새봉논두레(이후 한새봉두레)가 만들어졌다.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한새봉에 있는 개구리논을 공동경작하며 일곡마을 사람들과 물과 흙, 동물과 식물, 햇빛과 바람이 숨 쉬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등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히 마을공동체에 대한 결속도 다질 수 있었다.

광주 북구 일곡동 끝자락 한새봉 개구리논을 중심으로 도시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활동은 도시농업에 회의적이었던 그동안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개구리논 농사를 통해 소통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를 알게 되니 뭔가 재미있는 일을 펼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하나하나 엮어 지금은 문화예술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지음으로써 서로의 관계에 소원하고, 관여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는 도시민들에게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형성됐다. 주민이 함께 모여 의논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며 ‘農’(농)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농업의제 공부모임’을 가입하고 그곳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G씨는 텃밭 농사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살리는 농사, 자연의 순환과 기후위기를 접목하는 교육방식을 고민하면서 퍼머컬처 방식을 도입하고자 했다. 퍼머컬처 텃밭을 통한 잉여의 분배와 문화, 공동체생활을 연결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M씨는 한새봉 개구리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공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M씨는 마을 공유지에서 최소한의 생계에 필요한 것을 경작하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안전망 확보가 가능하다고 했다. 마을의 공유지는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도시농부들끼리 교류하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S씨도 있다. S씨는 도시농부들끼리 한 달에 한 번 하는 공부에 참여하면서 교류가 시작됐다.

도시농부들이 토종씨앗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 전문 강사의 강의도 들었다. 이후 ‘도시농업 장터’와 관련된 의견이 나와 보자기 장을 여는 활동도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과 함께 농사짓고, 직접 지은 농산물로 요리하는 교육현장 실천가 L씨가 있다. L씨는 청소년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경험이 훗날 성인이 된 후에도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G씨, M씨, S씨, L씨. 이들은 거창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었다. 삭막한 도시에서 느리지만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나누고 엮어가고 있을 뿐이다.

김미숙 일상문화발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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