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용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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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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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라는 장소의 역할과 의미에 큰 변화가 있을 모양이다. 북악산에서 세종로, 서울역, 용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중심부의 성격에도 변동이 있게 되었다. 대통령이 떠나고 남을 청와대, 그리고 옮겨갈 용산이라는 장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경복궁에서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공간축은 조선조 창건 때부터 이어진 유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여기에 르네상스식 중앙청과 블러바드(대로)가 조성되면서 서구 양식이 덧입진 적도 있었지만 큰 틀의 변화는 없이 유지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대통령의 공간인 청와대가 경복궁 후면에 들어서고 중앙청은 지워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알다시피 이 공간의 배경에는 조선조 이래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이 있다. 좋은 기운이 모이는 가장 이상적인 왕궁터를 찾은 결과인 것이다. 우선, 산지가 많은 북쪽과 한강을 중심으로 물이 많은 남쪽이 배산임수라는 풍수의 기본 틀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경복궁 후면까지 내려오는 북악산이 주산, 동서 방향의 낙산과 인왕산이 각각 좌청룡과 우백호가 되면서 왕궁을 호위하는 형세를 이룬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남산이 안산, 관악산이 조산을 이루고 청계천은 남쪽을 감싸는 명당수를 이루면서 풍수는 완성되어 간다. 그 중심부에 비로소 왕궁이 놓인 것이다.

왕궁의 위치가 정해지면 이제 그 주변으로 도읍을 이루는 공간들이 자리 잡는다. 왕궁 좌우로는 종묘와 사직을 두어 왕실을 지키는 신들을 기린다. 남쪽으로는 왕의 길인 주작대로를 내어 신하들이 그 좌우에 조아리며 자리 잡게 한다. 한편, 조선조의 풍수 사상은 백성의 생활 편의에 대해서는 야박한 편이었다. 시장이나 교차로 같은 장소들은 부정하게 여겨 오히려 금지하기도 했다. 풍수는 기본적으로 왕조를 위한 계획원리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청와대를 한번 생각해보자. 조선조 이래 왕의 공간에 자리 잡은 청와대,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은연중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왕의 유산을 부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주작대로에 해당하는 세종대로 변에는 정부청사가 놓여 있다. 왕의 길옆에서 신하가 조아리는 풍수 원칙을 아직도 따르는 형국이다. 심지어 그 가운데는 세종대왕의 동상까지 놓여 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을 조선왕조의 후계자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날은 왕정 시대가 아니고 대통령도 왕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대통령이 복을 받아 백성에게 태평성대의 은총을 내리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카를 포퍼는 엉망인 리더가 선출된다 해도 나라를 망가뜨릴 수는 없을 정도로 견제 체계가 잘 작동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 주장한 바 있다.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견제와 시민들의 감시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받고 증명되어야 자리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 집무실은 이러한 개념을 실제로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워싱턴의 백악관이다. 동서로 뻗은 웅장하고 화려한 대로가 있지만, 이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한다. 백악관은 정작 대로를 벗어난 작은 마당을 끼고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비행기 모양의 도시로 잘 알려진 브라질리아의 경우도 유명하다. 비행기 조종석에 해당하는 위치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었지만, 그 앞을 대법원과 국회의사당이 가로막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삼권분립의 견제 내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공간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청와대의 위치는 제왕적이면서 폐쇄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비운의 말년을 맞은 것도 어쩌면 청와대라는 장소의 성격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집무공간을 청와대로부터 옮겨야 한다면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대통령에게 부지불식간 주어진 왕조의 유산, 그로부터 이제는 분명하게 떠나가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한 부분으로 다시 명확하게 자리 잡는 것, 그것이 집무실 이전의 진정한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용산은 용산대로 사연이 많은 장소이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이,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기지를 두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구한말에는 다시 청나라 군대, 일본 군대가 돌아가며 주둔하는 장소로 쓰이면서 외세침략의 거점이라는 아픈 낙인이 찍혀버렸다. 나라가 약하다 보니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오히려 침략의 장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후 이곳은 국방부와 미군기지로 쓰이며 오명은 벗었지만, 여전히 군사용지라는 부담감은 한편에 남아 있었다.

마침 용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떠나면서 군사용지라는 부담을 씻을 기회가 온 것이다. 국방부가 이전하고 대통령 집무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변화는 한층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항상 내주어야만 했던 중심부가 다시 서울의 한 부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심장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청와대나 용산의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이렇고 저렇다 한들 이전을 반대하는 의견들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작은 살림 이사도 고민 끝에 결정되지 않는가. 결국 이전의 당위성이란 것이 있다면 이는 왈가왈부가 아닌 실행으로만 증명되는 것이겠다. 그렇게 어렵사리 비운 청와대는 제대로 된 시민 감동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용산은 권위와 개방 사이에서 균형 잡힌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을지, 시민들로서는 계속 두고 보며 감시해가야 할 일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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