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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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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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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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임박했지만, 나라의 관심은 온통 ‘검수완박’이라는 네 글자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거리의 풍경도 좀 이상하다. 과거에는 허무맹랑한 내용이라도 그래도 지역 공약들이 선거의 주제가 되곤 했는데, 이번엔 무슨 일인지 그런 모습도 잘 안 보인다. 심지어 지자체장이 되어 ‘정국 운영에 도움을 주겠다’는 후보까지 있을 정도이다. 중앙정치인과 찍은 사진으로 건물을 둘러 싸놓고 선거운동을 벌이는 후보도 있다. 이쯤 되면 지방자치 선거가 중앙정치의 변방 정도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혼란은 그뿐이 아니다. 지자체장 공천을 놓고 거의 전국적으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공천을 받는 순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 지역들이 문제다. 경선이 사실상 최종관문이다 보니, 이른바 ‘당심’을 주도하는 인물과 후보자 간에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책이나 지지도는 둘째 문제이고. 일단 당심을 얻어야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니,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줄을 서는 행위로 전락해버린다.



지역민의 입장에서 상식을 동원해 보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방의 정치는 중앙의 정치와는 다른 측면이 있고, 또 달라야 하는 것 같다. 중앙정치는 입법과 행정에 대한 것들이고, 결국 여의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에 비해 지방정치는 각 지방 도시의 ‘살림살이’에 가깝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시절인가? 지방소멸이라는 과격한 표현이 이제는 아무렇게나 쓰일 정도로 지방 위기가 일상화된 시기이다. 지자체장이라면 자기 지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사력을 다해야만 때인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지역을 잘 파악하고 있고 ‘지역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방선거가 그야말로 중앙정치의 분실처럼 되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역시 정치인들의 자리 찾기 습성 때문이다. 지방자치 선거 출범 이후 지자체장에게도 정당 공천은 사실상 필수가 되어 버렸다. 결국 지방자치도 정치판의 일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고 나니 두 가지의 달갑지 않은 흐름이 발생한다. 첫째는 정치인이 지자체장을 중앙으로 진출하는 일종의 교두보로 보는 흐름이다. 지자체장 자체를 소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급(?)을 올려가는 발판으로 보곤 한다는 것이다. 기초지자체에서 광역지자체, 중앙행정, 그리고 결국 중앙정치인으로 가는 식이다. 신분 상승(?)의 당연한 욕구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욕구에 사로잡힌 지자체장이 지역발전에 헌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나타난 두 번째 흐름도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지자체장 자리가 중앙정치의 싸움에서 물러나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정치인은 지자체장에 출마하며 낙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자체장 자리가 별장(?)도 아니건만, 휴식과 재기를 위해 활용한다니. 목숨을 걸고 지역 살리기에 매진해도 모자랄 시기에 지역민들로서는 영 개운치 않다.



결국 던지고 싶은 의문은 왜 지자체장 자리가 하나의 구분된 ‘전문직’으로 인식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방정치도 중앙정치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자체장에게 필요한 특별한 성품이나 능력치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중앙정치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지방선거는 휩쓸려 형체를 잃어가는 형국이다. 지역마다 국회의원 선거건 지자체장 선거건 간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사람은 똑같다는 것도 알고 보면 그 증거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지방선거는 위기에 몰려있는 것 같다. 당장 최근 몇 년간만 보아도 성 추문, 선거 개입 등으로 몰락한 광역 지자체장이 벌써 몇 명인가? 어디 그뿐인가. 지난 대선도 지자체장 시기의 도시개발 문제가 선거판을 좌우했을 정도이다. 굵직한 것들이 이 정도이지, 전국 지자체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위를 모두 다루자면 모르긴 해도 매일의 신문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방선거가 정치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라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지방선거를 정화할 수 있는 특별한 대책 없이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일까. 요새 대학교수들에게는 여러 종류의 ‘트랙’이란게 있다. 강의를 주로 전담하는 트랙, 연구나 산학협력을 주로 하는 트랙 등이 그것이다. 같은 교수라도 각자의 여건과 능력에 따라 구별된 역할을 맡자는 취지이다.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선거 출마자들에게 이런 트랙 개념을 부여할 수는 없을까. 지자체장이 되고 싶어하는 출마자들에게는 ‘지방선거 트랙’을 지정하고, 그와 관련된 공천에서는 가점을 주는 것이다. 그저 자리가 필요해 출마하는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자체장이 정치판을 벗어난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면, 임박한 지방 위기의 파고를 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갈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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