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마음 들어주기
  • 경북도민일보
아픈 마음 들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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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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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가끔 그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삶이 철저히 망가진 그는 건강도 좋지 않았고, 곁에 머무는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초췌한 모습으로 그가 찾아왔다. 또다시 쏟아내는 한탄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나는 그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냐고…. 삶이 그렇게 된 건 순전히 운명 탓만 아니며, 자신에게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며 칼끝으로 폐부를 찌르듯 결점들을 지적했다. 헤집는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눈물이 고인 듯, 아파 쓰러질 듯, 섭섭한 듯한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휘청거리며 돌아갔다.

그때부터였다. 그 슬픈 표정이 자꾸 생각났고, 연민을 자아내는 그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랬다. 그도 모든 사람의 갈구처럼 잘살기를 바랬고 행복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건 운명 탓도 있고, 자신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가 나를 찾아온 건 상처에 소금을 뿌려달라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팠고 외로웠다. 누군가에게 그 쓰라린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때 내가 해야 했을 일은 묵묵히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동정해주고, 같이 아파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후회했다. 몇 날 며칠을 반성했다. 그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는 만큼 그도 알고, 내가 느끼는 만큼 그는 더 깊은 삶의 비애와 가치를 깨닫고 있었다. 단지 위안을 받고 싶어 찾았던 것이었는데 나는 한 터럭도 안되는 지식과 우매함으로 그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뒷모습이 그토록 슬퍼 보였던 것이다.

협량한 나는 언제나 온전해질까. 걸핏하면 나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얼마나 교만한 행동이었던가. 그에게 진정 필요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저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함께 아파하지 않으면서 쏟아낸 말은 쓰다 버린 휴짓조각과 다를 바 없었다. 나의 행동은 감옥에 갇혀 후회하고 아파하는 사람에게 면회를 가서 위로는커녕 “넌 왜 그따위로 살아서 감옥에 들어갔냐”며 힐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반도 진심으로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탐구하지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기에 나는 지금까지 입만 있었고 귀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파하는 사람의 곁에 묵묵히 있어 줄 수 있다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입으로 위로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만이 소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가슴 깊이 깨달았다.

우리는 듣는 것을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거나 심드렁하게 들으면 그건 모욕이고,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뜻한다.

나는 다짐했다. 이젠 판단하며 듣지 말자. 미리 내 자신의 기준을 정해 놓고 타인의 의견을 평가하려 하지 말자. 이젠 아파하는 사람에게 조언하고 가르치려 들지말자. 그냥 같이 아파해주자. 이젠 내 가치관에 합당하지 않다고 건성으로 듣지 말자. 공감하고 배려하며 들어주자. 이젠 행동에도 조심하자. 말하는 그 사람이 불쾌해하고 상처받지 않도록 표정이나 손짓도 조심하자.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픈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돌아오는 말이 단점이나 실수를 지적하며 충고하는 것이라면 가까운 사람마저 먼 타인으로 느껴지고, 마음 문을 닫게 하여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그 아픈 심정을 헤아려주고 들어주는 것이다.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겨우 이런 일 가지고 좌절하느냐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이겨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고, 사람마다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다르며, 사람마다 벽에 부딪혔을 때 상처 나는 크기도 다르니까. 이철우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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