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병’에 스러진 천재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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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병’에 스러진 천재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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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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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씰(seal)이라는 것이 있었다. 5060세대, 즉 MZ세대의 부모들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으레 우체국에 가서 크리스마스 씰을 몇 장 사서 우표 옆에 정성스레 붙이곤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2000년대 들어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 씰이 우체국에서 사라졌다.

크리스마스 씰은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퇴치기금 조성을 위해 발행한 것이다. 실제로 우표 크기의 크리스마스 씰에는 작은 활자로 ‘대한결핵협회’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5060세대가 아무런 저항감 없이 크리스마스 씰을 연례행사처럼 구매한 데는 결핵이 그만큼 만연해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에 크리스마스 씰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3년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모두가 헐벗고 굶주렸던 1950~1960년대는 결핵균의 전성시대였다. 1960년대 인구의 5%가 결핵 환자였다는 통계도 있다. 결핵이 사망원인 1~2위를 오르내렸다. 전형적인 후진국병으로 여겨진 배경이다. 옛날 사람들은 결핵을 ‘폐병’이라 불렀다. 결핵과 폐병은 뉘앙스가 다르다. ‘폐병’이라는 별칭에는 걸리면 죽는다는 공포가 배어있다.

시인 이상·존 키츠·퍼시 셀리, 극작가 안톤 체홉, 소설가 샬롯 브론테·프란츠 카프카·조지 오웰·에드가 알렌·포토마스 만·서머싯 몸, 화가 모딜리아니 등이 결핵균에 무릎을 꿇었다.

의료 수준이 발달한 지금 결핵은 더 이상 난치병이 아니다. 두려워 하는 사람도 없다. 의사가 지시하는대로 약만 꾸준히 1년 이상 복용하면 다 완치된다.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결핵과 함께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질병이 매독이다. 신문 국제면을 넘기다가 제목에 눈길이 확 끌렸다.

‘日 매독 확산 미스터리 작년 환자 7875명 역대 최대, 올해 확산 속도 작년의 1.6배’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월10일까지 14주 동안 일본 전역에서 보고된 매독 감염자 수는 2592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595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마이니치는 “올해 환자 수가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작년의 1.6배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일본의 매독 감염자 수는 7875명으로 1999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지만, 현재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다시 한번 최다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매독은 일본에서 1940~1960년대 크게 확산됐지만 항생제가 보급된 이후 급감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라진 병이라는 의미에서 ‘유령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본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 주인공은 20년 주기로 인물이 바뀐다. 2004년부터 발행되고 있는 1000엔 지폐의 인물은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1876~1928). ‘조막손의 세균학자’로 알려진 노구치 히데요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일본에서 추앙받는다.

인류는 오랜 세월 매독과 싸워왔다. 그러던 1911년, 일본의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가 매독균을 발견했다. 매독의 원인균이 규명되자 과학자들의 연구는 탄력을 받는다. 결국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마침내 인류는 매독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매독은 ‘유령병’으로 취급당했다.

슈베르트와 스메타나의 사인은?

일본에 매독이 확산 중이라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노구치 히데요와 함께 매독으로 스러져간 천재들의 이름이 잇달아 떠올랐다. 빈의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 파리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프라하의 음악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먼저 만나볼 사람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가곡 하면 슈베르트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 그는 가곡을 자그마치 600곡이나 썼다. 빈 토박이인 슈베르트는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작곡을 배웠고 베토벤을 흠모해 베토벤처럼 되고 싶었다. 가곡에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뛰어넘었다. 괴테의 시 ‘들장미’는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면서 날개를 달았다. 무명 시인 빌헬름 뮐러는 슈베르트를 만나면서 이름을 얻었다. ‘겨울 나그네’가 대표적이다.

1828년 11월19일, 독신인 슈베르트가 동생 집에서 눈을 감았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인은 장티푸스. 그해 여름부터 주치의는 슈베르트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가의 몸에서 수은중독의 증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매독 치료에 수은 치료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작곡가는 두통, 고열, 관절 부종으로 고통을 겪다 숨졌다. 매독은 천재 작곡가를 31년 만에 데려갔다.

이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프라하로 가보자. 보헤미아 민족음악 태두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

그의 대표작은 교향시 ‘나의 조국’. 이중 제2곡 ‘블타바’가 널리 사랑을 받는다. 프라하 중심가를 관통하며 보헤미아 평원을 적시는 블타바강을 교향시 표제로 삼았다.

그는 교향시 제1곡 ‘뷔셰흐라트’를 쓸 때부터 청각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제3곡 ‘샤르카’를 작곡할 때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1882년 교향시 전 6곡이 프라하에서 초연되었지만, 작곡가는 그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음악적 성취와는 달리 음악가의 사생활은 불행으로 점철되었다. 말년에 그는 3년여 프라하의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로 죽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김나지움 동창이자 첫사랑인 카를로바와 결혼해 슬하에 딸 넷을 두었다. 그런데 아내가 결핵으로 숨졌다. 그리고 딸 셋이 잇따라 하늘나라로 갔다. 이런 일들이 삼십대 5년 동안 들이닥쳤다. 작곡가는 절망했다.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던 작곡가는 열아홉 살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사랑에게서 위로받고 희망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작곡가는 오십대 후반부터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났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아버지를 돌봤으나 정신착란 증세가 심해지면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1882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착란은 매독 때문이었다. 매독균이 혈관을 타고 뇌까지 침범한 결과였다.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작곡가는 정신병원에 갇힌 채 외롭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음식물을 전혀 삼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는 간신히 맥주와 와인을 목으로 넘기며 ‘바이올렛 아워’를 기다렸다.

블타바강에 걸쳐 있는 석축교가 저 유명한 카를교. 구시가 방향, 그 다리 바로 옆에는 스메타나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공식 사망확인서에는 스메타나가 정신병원에서 사망했으며 사인을 ‘부끄러운 병’이라고 표기했다. 체코인이 우러르는 작곡가가 매독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차마 기록할 수 없었으리라.

몽마르트르의 화가 로트레크도

기구한 운명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로트레크 하면 자동으로 몽마르트르의 극장식 식당 물랭 루즈가 연상된다. 샹젤리제의 리도와 함께 파리의 밤 문화를 대표하는 물랭 루즈.

36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화가 로트레크. 그의 이름 앞에는 관용어처럼 ‘비운’이 붙는다. 그는 키도 아주 작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장애를 타고났다. 다중 장애는 근친혼의 결과였다. 귀족인 부모는 사촌지간이었다. 다리가 약해 걸핏하면 넘어졌고, 툭하면 골절상을 입었다. 그래서 늘 지팡이를 집고 다녀야 했다. 현대의학에서는 집합 장애를 가리켜 ‘로트레크 증후군’이라 부른다.

에펠탑이 등장하던 해인 1889년 몽마르트르에 물랭 루즈가 문을 열었다. 그가 스물다섯 살 때다. 가족과 사회에서 냉대를 당한 그를 품어준 것은 물랭 루즈와 사창가였다. 물랭 루즈의 단골인 그는 무희들을 소재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포스터도 많았다. 물랭 루즈는 로트레크의 그림으로 인해 파리에서 유명세를 얻는다. 가장 유명한 것이 ‘물랭 루즈에서의 댄스’다. 그는 창녀 ‘로사 라 루즈’와 가깝게 지냈고, 그녀를 여러 번 그림에 등장시켰다.

화가는 1899년부터 매독과 알콜중독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잠깐씩 통증이 가시고 정신이 돌아오면 그림을 그렸다. 1901년 눈을 감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 ‘의학부 시험’이다.

그리고 아들은 고향 알비의 어머니 집에서 눈을 감았다. 아들이 죽자 어머니는 고향의 고성을 사들여 미술관을 세운다.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이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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