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의 기우제(祈雨祭)
  • 모용복선임기자
포항시의 기우제(祈雨祭)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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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관개시설 부족했던 고대엔
기후 변화에 따라 豊凶 결정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 올려
관개농업이 발달한 현대에는
가뭄·홍수 영향 크게 안받아
올해 같이 심각한 가뭄 들면
벼 비롯 농작물 피해 불가피
포항시 장기면 기우제 거행
단비 내려 그나마 해갈 도움
농사 반은 사람 정성이 짓고
반은 하늘이 짓는단 말 실감
모용복 선임기자.
모용복 선임기자.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만물(萬物)은 물에서 비롯되고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옛부터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농업이 발달했다.

관개(灌漑)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비, 하천 등 자연발생적인 물에 의존해 영농이 이뤄졌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결정됐다. 가뭄이 심하게 들거나 홍수가 나면 그 해 농사는 ‘말짱 도루묵’이 된다.

예전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 이삭이 나오는 출수기(出穗期)까지는 ‘물의 전쟁’이 펼쳐진다. 대부분 농업에 생계를 대고 있었으며, 관개수로가 발달하지 못한 탓에 제 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오죽했으면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고사성어까지 생겨났을까.

농사의 풍흉(豊凶)은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넘어 국가 흥망성쇠와도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그래서 큰 가뭄이 들면 임금까지 나서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잘못을 고했다. 이러한 기우제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에는 각 나라의 시조를 모신 사당인 시조묘나 명산대천에서 기우제를 올렸으며, 불교가 성행했던 고려시대에는 주로 사찰에서 법회와 제를 지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수시로 사직단에서 제를 지냈으며, 4월에서 7월 사이 연중행사로 기우제를 올린 것으로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요즘은 관개농업이 발달해 어지간한 가뭄이나 홍수에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지역 곳곳에 댐과 저수지를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게 한다. 또 장마나 홍수 시에는 수위 조절을 통해 농사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는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없는 물을 만들어 쓸 수 없는 이상 올해처럼 비가 내리지 않으면 현대 관개시설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경북지역 강수량은 116.4㎜로 지난해 279.9㎜나 평년 266.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포항 등 동해안지역은 더 심각하다. 포항의 올해 5월까지 누적 강우량은 111.3㎜로 평년 281㎜의 40%에 그쳤으며, 최근 1개월 강우량도 40㎜로 평년 145㎜대비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 피해가 확산하자 6·1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이강덕 포항시장은 업무복귀 첫 일정으로 가뭄피해 현장부터 찾았다. 이 시장은 선거 다음날인 2일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대송면을 찾아 농민 피해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유관기관 간 유기적인 공조와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또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직접 펌프를 이용해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도 했다.

이날 포항시 장기면에서는 관(官) 주도로 기우제도 거행됐다. 장기면과 장기농업협동조합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장기읍성에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제단에 올리고 하루속히 비를 내려주기를 하늘에 기원했다. ‘요즘 세상에 뚱딴지같이 무슨 기우제냐’고 타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우제는 가뭄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어루만지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포항시의 위민(爲民)행정과 기우제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다음날 비가 내렸다. 지난 4~6일까지 사흘간 봄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타들어 가던 농심(農心)에도 단비를 뿌렸다. 비록 가뭄 해소엔 역부족이지만 급한 불은 껐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옛 어른들 말씀에 “농사는 반은 인간의 정성이고 나머지 반은 하늘이 짓는다”고 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의 힘으로써 어쩌지 못하는 영역이 아직 많다. 농사도 그 중 하나다. 하늘만 바라보지는 않을지언정 많은 부분을 하늘에 기대고 있는 것이 농사인 것이다. 포항시 가뭄정책에 기우제도 끼워 넣어야 할 판이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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