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거짓에 속을 사람은 없다
  • 손경호기자
더이상 거짓에 속을 사람은 없다
  • 손경호기자
  • 승인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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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무신불립’은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려 있다. 공자(孔子)는 식량,무기,신뢰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무기를 포기하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식량을 포기하고, 신뢰는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는 것이다.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삼국지(三國志)에도 ‘무신불립’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후한 말기 북해태수를 지낸 공융은 조조의 공격을 받은 서주(徐州)를 구하기 위해 유비에게 공손찬의 군사를 빌려주었다. 공융은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를 잃지 말도록 당부했다. 그러자 유비는 논어에 실린 ‘무신불립’을 언급했다.

거짓말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신뢰를 잃은 집단이 바로 정당이다. 약속 뒤집기를 밥 먹듯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대구 중·남구 무소속 임병헌 국회의원의 복당이 대표적이다. “복당은 없다”던 기존 입장을 석 달여 만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대구 중·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곽상도 의원이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아들 50억 퇴직금’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치러지게 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무공천 방침과 함께 탈당 후 무소속 출마자의 복당은 없다는 원칙을 공언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임병헌 의원의 복당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복당 승인 이유로 지역 당원들의 강한 요청이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이준석 대표는 당원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언급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기는 마찬가지다.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의 성추문 의혹 사건으로 인해 치러졌다.

민주당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20년 11월3일 기존 당헌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삽입, 2021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했다. 당헌 개정과 공천 찬반 여부를 묻는 전당원 투표에서 찬성이 86.64% 나왔다.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만든 ‘정치개혁안’이었던 무공천 조항은 이렇게 형해화(形骸化)됐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자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데도 당헌을 어기고 공천을 강행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당 안팎의 의견을 들은 결과임을 내세웠다. 국민의힘이 석달 전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고, 임 의원의 복당 이유로 당원들의 의사 존중을 든 것과 별 반 차이가 없다. 정당들이 약속을 뒤집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당원’들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앞서 민주당은 21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한 전례가 있다.

이러니 정당들이 그 어떤 약속을 해도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믿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승리 이후 혁신위를 띄우고 있다. 차기 총선 공천 시스템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복당 불가 약속도 못지키는 정당의 공천 시스템 개혁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을 유권자들이 얼마나 될까. 정치적 ‘쇼’정도로 치부하지 않으면 다행일 뿐이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정당들은 그동안 합당이나 당명 개정 등으로 ‘분칠’을 해왔다. 하지만 더이상 거짓에 속을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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