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바흐 칸타타, 라이프치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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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바흐 칸타타, 라이프치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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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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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 30주년을 맞은 지인 B에게서 부부 동반 독일 여행 계획을 들었다. 5년 전, 서북부를 제외한 독일을 일주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B가 짠 여정에 맞장구를 치며 호응했다.

전체적인 스케줄은 효율적으로 짜여 있었다. 그런데 딱 한 도시에서, 선험자로서 나는 일정 조정을 권했다. ‘1박’을 ‘2박’으로 늘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곳은 ‘라이프치히’였다.

라이프치히는 알려진 대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를 탄생시킨 도시이고,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태를 묻은 곳이다.

그뿐인가. 스무 살 청년 괴테를 기억하고 있으며 ‘파우스트’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니체도 라이프치히에서 청춘을 보내지 않았던가.

내가 B에게 라이프치히에서 하루 일정을 늘려 꼭, 반드시 가보라고 한 곳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의 현장이다.

1812년 겨울 러시아 원정에서 패퇴한 나폴레옹은 전열을 가다듬어 1813년 10월 또 한 번 원정에 나선다. 그 현장이 라이프치히 외곽 들판이다. 그 세계사적 현장에는 거대한 전승기념탑이 있다.

나는 이 전승기념탑에 얽힌 이야기를 ‘언젠가 유럽’(2020)에 자세히 쓴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해 권좌에서 내려왔고, 지중해 엘바섬에 유배됐다. 이로써 사실상 나폴레옹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전투는 1813년 10월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치러졌다. 이 전투에 나폴레옹군 22만5000명, 반(反)나폴레옹 연합군(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 38만명이 참전했다. 불과 4일간의 전투를 통해 10만명 안팎의 군인이 전사했다. 나폴레옹군은 4만5000명이 죽었다.

상상해보라. 들판에 버려진 채 썩어가는 수만 구의 시체를. 1813년 12월, 라이프치히에 장티푸스가 돌아 수천명이 죽어 나갔다. 장티푸스는 수인성 전염병.

바그너의 호적상 아버지도 이 장티푸스로 죽었다. 라이프치히를 강타한 장티푸스는 썩은 시체의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켜서 발생한 것이다.

이미 많은 전쟁사 연구가들이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이 이 전투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전쟁의 승패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때때로 날씨라는 요소도 불쑥 끼어든다.

지금까지 나온 패인(敗因) 중 하나는 반나폴레옹 연합군의 주력인 프로이센 군대가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하는 주력 부대와 대결을 피한 후 다른 장군들의 부대를 격파, 나폴레옹을 포위·고립시켰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패인은 초반 나폴레옹군 편에 섰던 작센군과 뷔르템베르크군이 막판에 마음을 바꿔 연합군 편으로 가담해 전세가 기울었다는 것이다.

작센은 현재의 라이프치히를 둘러싼 지역을 지배했던 왕국이었다. 작센은 북부의 프로이센, 남부의 바이에른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막판에 연합군에 힘을 보태면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최근 번역·출간된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우스이 류이치로 지음)는 세계사를 바꾼 라이프치히 전투를 ‘커피’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분석하는 책이다.

나폴레옹은 1806년 11월 베를린 칙령을 반포한다. 이른바 대륙봉쇄령이다. 이로 인해 서인도제도와 자바에서 독일로 들어오는 커피가 막혔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커피 봉쇄가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을 불렀다고 분석한다.

“각종 뿌리나 홉을 우려낸 ‘대용 커피’에 질린 독일인들은 분연히 일어나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참여했다.”

북 리뷰에서 이 대목을 접하는 순간, 쿵 하고 뇌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잠시 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폴레옹은 왜 커피 수입을 막았을까. 커피 마니아인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커피의 마력을 잘 알고 있었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나폴레옹은 파리 프로코프 카페의 단골이었다. 프로코프 카페와 관련된 일화도 여러 개다.

나폴레옹은 프로코프 카페를 드나들며 커피와 함께 지성을 배웠다.

그는 여러 원정에서 진중 도서관을 운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당대의 베스트셀러를 비치해 장교와 병사들이 읽게 했다. 또한 커피를 필수 보급품에 포함했다.
라이프치히 퓔커슐레흐트뎅크말 전경.


그렇다면, 라이프치히에서는 라이프치히는 파리, 베네치아와 함께 유럽에서 커피 역사가 장구한 도시다. 그 상징 공간이 커피하우스 ‘춤 카페 바움’이다. 1566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 두 번째 오래된 카페다.

‘커피의 도시’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바흐도 있다. 바흐의 작품 중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커피 없이는 못 산다고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딸. 커피를 놓고 벌이는, 절대 가볍지 않은 부녀간의 갈등을 희극적으로 그린 게 ‘커피 칸타타’다.

기호 식품인 커피가 칸타타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커피가 라이프치히 사람들의 일상에 얼마나 오랫동안 깊숙이 침윤해 있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바흐는 커피와 관련한 어록도 남겼다.

“모닝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는 단지 바싹 구워진 양고기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1813년 10월, 라이프치히 전투로 돌아가 보자. 나폴레옹에 줄을 섰던 작센 왕국은 왜 하루아침에 나폴레옹에 등을 돌렸을까.

나폴레옹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면 독일 사람들이 프랑스에 항복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계산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반나폴레옹 전쟁을 결집하는 역효과를 빚었던 것이다. 작센군 11만5000명이 나폴레옹에 총을 겨눴다. 커피에 대한 욕망이 ‘독일민족 해방’이라는 대의를 걸쳐 입으면서 전투의 승패가 갈렸다.

1453년은 세계사의 전환점.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됐다. 오스만 제국은 실크로드의 대상(隊商) 무역을 금지시켰다. 서양과 동양을 잇는 가느다란 육로가 막혀버렸다. 콘스탄티노플은 대상 무역의 집하장(集荷場).

얼마 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이 난리가 났다. 유럽 상류층은 이미 인도산 향신료가 가미된 육식의 맛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향신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배를 타고 인도에 가서 한가득 향신료를 실어 올 수만 있다면. 야심만만한 유럽의 탐험가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대서양 서쪽 바다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중해 시대는 저물고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맹렬한 인간의 욕망이 미지의 대양으로 닻을 올렸다.

나폴레옹 시대 유럽인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질렸다. 그런 나폴레옹의 가공할 파워를 다른 시대의 아시아 사람이 체감하기란 힘든 일이다. 관념적으로만 이해할 따름이다.

라이프치히 전승기념탑의 공식명은 퓔커슐라흐트뎅크말. 이 기념탑이 위치한 주소는 ‘10월18일 길 100’. 라이프치히 전투의 분수령이 되는 날을 기념해 ‘10월18일의 길’이라고 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15번 전차를 타면 15분 거리다.

이 기념탑은 사진으로 봐서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러나 기념탑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비로소 실감했다.

독일은 1913년, 전승 100주년이 되는 그 해에 91m 높이의 이 화강암 기념탑을 완공했다. 입장권을 사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 라이프치히 들판을 둘러보았을 때 깨달았다.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넬슨전승탑이나 베를린의 전승탑 지게스조일레는 위용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비로소 19세기 전반 유럽을 떨게 했던 나폴레옹의 맹위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호 식품에 대한 인간 욕망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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