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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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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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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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킬레스 신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뱀 섬(즈미이니 섬)은 국제법상 도서로 인정받기 위한 상주 인구 100명 남짓의 소형 섬이다. 주민은 수비대와 해양연구자들이다. 본토에서 35킬로미터 거리다. 해변에서 잘 보인다. 척박해서 수목이 없고 해안은 낮은 바위 절벽이다. 긴 쪽이 660미터로 전체적인 형상은 사각형에 가깝다. 섬 중앙부에 등대가 있는데 아킬레스 신전 자리였다고 한다.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가장 먼저 뱀 섬을 점령하기로 했다. 후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되는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를 보냈다. 러시아는 몇안되는 섬 수비대에 투항을 종용했지만 “꺼져버려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 그 말을 끝으로 모두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영웅담이 되었다. 우표도 나왔고 뱀 섬은 우크라이나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일단 점령은 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견디지 못하고 6월 30일에 다시 내주었다.

전쟁 이전에도 뱀 섬은 국제적으로 유명했다. 떠들썩한 법률분쟁의 주인공이었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는 1997년에 쌍방의 국경선을 존중하기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연안의 해양경계선이었다. 국경 연안 해저에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계선 획정의 초점이 뱀 섬의 법률적 지위였다.

이 섬이 국제법 상의 섬으로 인정되는 경우 우크라이나의 대륙붕은 루마니아 방향으로 확장되어 해양경계선이 루마니아에 불리하게 그어진다. 반대의 경우 이 섬은 경계획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양국 간 해양 경계는 육상 경계와 대체로 같은 방향, 등거리선 원칙에 따라 그어진다.

루마니아는 2004년 9월에 뱀 섬이 사회경제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양국 간 경계획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ICJ는 2009년 2월에 루마니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뱀 섬은 우크라이나 해안 지형 일부가 아니며 법률이 지리를 재편할 수 없다는 것이다. ICJ는 뱀 섬이 12해리 영해는 가지지만 경계획정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해저 자원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쪽에 치우쳐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쿨하게 판결에 승복했다.

뱀 섬은 러시아 침공으로 군사적 가치가 높아졌다. 오데사항을 출발, 연안을 따라 지브롤터해협으로 항해하는 우크라이나 선박들을 보호해 주는 거점이다. 반대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해로가 막힌다. 러시아의 1호 목표물이었던 이유다.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바다 한가운데의 작은 섬이 나라 전체를 지탱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시아를 보자. 지도에서 대만의 위치와 형상을 보면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이 중국을 코앞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김용옥 교수). 이 항모는 너무나 커서 침몰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이동시킬 수도 없다. 중국의 심정이 어떤지 짐작이 된다. 그래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수면 위로 살짝 나와 있는 암초들을 섬으로 만들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일단 시멘트공장을 짓고 국제법 상 섬으로 인정받기 위해 산호초들을 몰살시키면서 준설, 매립한 후 병원, 학교, 종교시설도 짓는다. 사람도 물론 이주시킨다. UN해양법협약 제121조 제3항은 인간의 거주가 가능하고 독자적인 경제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해상 지형물은 섬이 아닌 암초라고 규정한다.

중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하이난섬에서 1천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제임스숄이 중국영토의 최남단이라고 가르친다. 말레이시아 연안에 있는 제임스숄은 간조 때도 해수면 22미터 아래에 있어서 도저히 섬이라고 할 수 없는 지형물이다. 중국 잠수부들이 내려가서 영토표시를 해놓았다. 중국이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던 1933년에 영국지도를 잘못 번역하면서 본 적도 없는 곳을 섬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고칠 생각이 없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남중국해는 전 세계 해상운송의 1/3을 담당한다. 중국은 원유 수요량의 85%를 남중국해를 통해 수입한다. 만일 이 해역에서 해상봉쇄를 당한다면 중국 경제는 몇 달 안에 붕괴한다. 대형 항공모함인 섬이 절실히 필요하다. 몇몇 암초를 둘러싸고는 중국과 대만이 원팀으로 베트남, 필리핀과 다투는 기이한 장면도 연출된다. 이렇듯 세계 각국은 경제적, 군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해양 지형과 섬을 놓고 다투어 왔는데 미래에도 같을 것이다.

영토에는 한 국가의 역사적 기억과 현실의 애환, 미래의 여망이 농축되어 스며있다. 영토분쟁이 대상의 규모나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국가적 동력을 작동시키고 전쟁까지 부르는 이유다. 여론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남의 ‘우리 땅’에 대한 도발이다. 섬은 특별한 사례다.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어서 국민적 정서가 쉽게 집중된다. 뱀 섬처럼 규모는 작지만 영토 전체와 전 국민의 외세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 독도가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도 같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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