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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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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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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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었다. 젖먹이 때 이후로 처음 본 먼 친척뻘 여섯 살배기를 혼쭐을 낸 적이 있었다. 사소한 잘못이었던지라 조용히 타일러도 되었으련만 왜 그렇게 어린애를 쥐잡듯 다그쳤는지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된다. 그런데 그 일은 그때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을 지나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를 만나면 눈길을 피했고 불편해했다. 어린 시절의 그 일로 나는 매몰차고 용서하지도 않으며 무섭고 난폭한 사람으로 뇌리에 각인된 듯했다. 어쩌다 만나게 되면 전심으로 잘 대해주었지만, 나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초두효과는 심리학 용어로서 어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느끼는 인상이나 외모, 분위기 등의 영향으로 그 사람에 대해 형성되는 고정관념이다. 이는 먼저 획득한 정보가 나중에 획득한 정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첫인상이 좋으면 이후에 발견되는 단점은 사소하게 받아들이지만,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어떠한 장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단점만 크게 보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의 뇌에 있다고 한다. 뇌는 보고 듣는 정보를 일관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뇌는 한 가지 일에 매달릴 여유가 없으므로 첫인상을 바탕으로 전두엽에 이미지화하여 저장하고 이후에 들어오는 이미지는 얼추 짜 맞추는 형식으로 정보를 처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실험으로 이 사실을 증명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A와 B라는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한 정보를 나눠주었다. 그런 다음 실험 참가자들에게 A와 B에 대한 느낌을 물어본 결과, A에는 대부분 호감을 느꼈지만, B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나타냈다. 똑같은 6개의 단어였지만 A는 긍정적인 단어를 앞에 배열했고, B는 부정적인 단어를 앞에 배열한 것만 달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B에게 비호감을 나타낸 이유는 부정적인 단어를 앞에 배열하였기 때문에 초두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으로 사람들은 실제로도 첫인상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초두효과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책이라면 꼭 한 번씩은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현대 사회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시대이다.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면 다른 모든 것에서도 실패하는 시대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람들과 부대껴야 비로소 자신의 가치가 발견되고, 정체성이 발달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 500여 명에게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이 뭐냐”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통계를 낸 결과, 자신이 가진 전문지식이나 기술은 성공 요인의 15%도 되지 않았고, 85%가 “좋은 인간관계”가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관계는 원활한 직장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직장동료나 상사와 불편한 관계가 되면 하루하루가 고역이 되고 만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드러난다고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난다. 무심결에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업무적인 일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을까.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귀와 눈을 열고 관심을 표하며, 긍정적이고 상냥한 모습으로 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간이 있고 능력이 있더라도 좋은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인간관계가 좋지 않다면 거울을 보지 말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눈빛, 태도를 살펴보라. 그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모습이 바로 당신 자신의 모습일 테니까.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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