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사를 다녀오며 ‘Let It Be’를 듣다
  • 모용복선임기자
부일사를 다녀오며 ‘Let It Be’를 듣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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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부일사 법회에 다녀오는 길에
비틀즈의 ‘Let It Be’를 듣다
그들은 노래의 의미와는 달리
멤버간 불화로 8년 만에 해체
법문하는 주지스님 무더위 속
얼굴에는 땀한방울 없고 평온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 버리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라 가르쳐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영일만대로에 진입했을 때 비가 내렸다. 전방 몇 십 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라디오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렛잇비(Let It Be)’

오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다. 1970년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다. 1962년 활동을 시작한 비틀즈는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전 세계 최고 음악가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네 명 멤버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음악적 성향이 너무나 달랐기에 불화와 갈등이 컸다.

‘Let It Be’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폴 매카트니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만든 곡이다. 그러나 끝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 앨범을 끝으로 그들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만일 노랫말의 의미처럼 순리에 따랐던들 더 많은 명곡으로 더욱 오래도록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Let It Be’의 의미를 되새기며 좀 전에 있었던 부일사 법회를 떠올렸다. 지난달 창립한 포항불자기자연합회(불기연)는 이날 장기면에 있는 부일사에서 송영희 회장을 비롯한 포항시공무원불자회와 처음으로 합동 법회를 가졌다. 입에서 젖내 날 적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절에 오르내렸으니 따로 예법을 배우지 않아도 눈동냥 귀동냥으로 절하는 법과 불경 몇 줄은 욀 수 있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사월초파일에도 절에 잘 다니지 않게 됐다.

이날 스님들의 등 뒤에서 쑥스런 삼배를 올렸다. 오랜만에 하는 절이라 허리는 뻣뻣해 잘 숙여지지 않았으며 몇 번의 절에도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칙칙한 날씨에 습도는 높아 땀이 전신에 배여났다. 신자들 앞에서 법회를 주관하는 네 분의 스님은 삼복더위에도 가사(袈裟)와 장삼(長衫)을 걸치고 염불에 열중이다.

천수경과 반야심경 봉독이 끝난 후 포항불교 사암연합회 총무부장이자 부일사 주지 구인 스님이 법문을 위해 우리와 마주 앉았다. 그런데 놀라웠다. 스님의 얼굴에는 땀방울 하나 보이지 않는게 아닌가. 나는 스님과 지근거리에서 마주 앉아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신자들은 대부분 웃옷을 벗는 등 가벼운 옷차림에도 더위를 이기기 버거웠는데 스님의 얼굴은 땀은커녕 너무나 평온했다.

구인 스님은 법문에서 “고통과 번뇌는 재(財)·성(性)·식(食)·명(名)·수(睡) 5가지 욕망에서 비롯되니 이러한 욕망을 끊어내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이 세상 만물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없고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니 쓸데없는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매사 방일(放逸)함이 없이 정진 노력하라”라고 했다.

시간 앞에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사물은 변하고 덧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찰나의 현상들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에서 괴로움은 비롯된다. 오랜 수행과 정진의 끝에서 스님은 이러한 진리를 터득했으리라. 그리고 일체의 외적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와 평온한 얼굴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리라. 법문을 들으니 비로소 스님의 얼굴이 평온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코로나19 감염증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 살아났다. 일주일 간 격리치료하면서 참 많은 걸 깨달았다. 몸이 아프니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온갖 번뇌와 망상의 끝자락에서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 나 회한으로 몸부림치기도 했다. 왜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을까? 왜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후회가 마음을 짓눌러 몸을 더욱 아프게 했다.

영일만대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여전히 거칠게 차창에 휘날린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참 오랜 만에 가져보는 마음의 안식이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Let It Be’는 아직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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