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백남준과 삼성전자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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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백남준과 삼성전자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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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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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미술관(MOMA), 암스테르담미술관, 도쿄도미술관,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세종문화회관, 포스코 서울본사, 백남준아트센터, 서울파이낸스센터….

세계 각국에 있는 미술관, 공연장, 기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곳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상설 전시 중인 공간이다. 미디어아트 작품 숫자가 가장 많은 곳은 백남준아트센터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 가면 대표작의 하나인 ‘TV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TV정원’을 볼 때마다 천재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접한 것은 세종문화회관 로비의 작품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세종문화회관 앞 정류장에 섰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비를 그으면서 이 작품을 시도 때도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서서히 50년 앞선 천재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다.

작품 제목은 ‘호랑이는 살아 있다’. 그런데 가끔 TV 화면 중에서 한두 개가 꺼져 있는 게 보이기도 했다. TV가 고장난 것이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TV가 고장 나면 끝이다. 미디어아트의 핵심은 TV 화면이다. ‘호랑이는 살아 있다’의 TV 브라운관은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것이다. 고장 났을 경우도 삼성전자에서 보수·수리한다.

백남준이 뉴욕에서 미디어아트를 꽃피울 때 그가 사용한 TV는 일본 소니(SONY) 제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소니는 세계 TV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실제로 백남준은 일본인 엔지니어를 뉴욕으로 데려와 기술적인 부분을 맡겼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상설 전시중인 ‘TV정원’ / 사진제공=조성관 작가
백남준의 이름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4년 1월1일 멀티미디어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서다. 1984년 이전에 한국인 중 아티스트 백남준을 알았던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주일대사관 공보관을 지낸 KBS 사장 이원홍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공산군을 피해 한국을 떠나야 했다.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가 도쿄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도쿄대학을 졸업한 1956년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서독(독일)이었다. 서독은 패전의 상흔에서 빠르게 재건되고 있었다.

서독에서 새로운 전위예술에 대한 모색과 실험을 끝낸 그는 뉴욕을 선택했다. 크로스오버(crossover)의 도시 뉴욕에서 마침내 미디어아트가 활짝 꽃을 피웠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백남준을 초청했다. 미국·유럽·일본에서는 ‘백남준’을 연호했지만 한국에서는 캄캄했다.

1983년 갤러리현대 회장 박명자는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이었다. 어느 날 박명자 회장은 원화랑 정기용 대표와 함께 김창열 화백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훗날 ‘물방울’ 연작(聯作)으로 이름을 얻는 김창열이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박명자는 백남준을 처음 만났다.

박명자는 백남준이란 이름을 듣고 있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김종학 화백을 통해 백남준이라는 아티스트가 뉴욕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터였다. 희한한 퍼포먼스도 하고 TV로 작품을 만든단다. 이름도 낯선데다 작품을 본 적이 없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우연히 파리에서 백남준을 만난 것이다. 식사 모임이 거의 끝날 무렵 백남준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연주를 했다. ‘울밑에 선 봉선화’와 ‘가고파’였다. 박명자는 전율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역만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고국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를 들었으니 말이다. 백남준의 내면에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조용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음악 아닌가. 박명자는 첫 만남에서 백남준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심한다. 갤러리현대가 백남준의 한국화랑으로 자리 잡는 계기다.



1987년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신라호텔에서 만난 두 천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백남준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87년. 갤러리현대 회장 박명자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저녁 자리에 이건희 회장 내외, 백남준, 정기용 원화랑 대표,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 박명자 회장 부부가 참석했다. 식사 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를 박명자 회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이건희 회장은 ‘삼성은 수십만 직원들이 수년을 노력해서 삼성을 일궜는데 백 선생님은 타국에서 혼자 힘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며 한국을 알리니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존경합니다. 앞으로 작품 제작에 필요한 TV는 삼성에서 지원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분은 첫 만남에서부터 급속도로 가까워 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백남준과 후원 계약을 맺는다. 미디어아트 작품에 소요되는 TV는 삼성전자가 후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날개를 달았다. 1988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미디어아트 작품이 설치됐다. ‘다다익선’이다. 이 작품은 백남준 작품 중에서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다다익선’은 몇 년간 고장으로 중단됐다가 최근에 재가동을 했다. 삼성전자 전담 엔지니어들이 고장 난 부분을 고친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동안 백남준을 일본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백남준이 소니TV를 사용하는 데다 부인이 일본인 구보다 시게코(1934~2015)이다보니 생긴 일이다. 1982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된 ‘삼색 텔레비전’의 TV는 소니사 제품이었다.

천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백남준과 이건희 회장의 1987년 만남에 주목한다. 두 천재는 첫 만남에서 어떤 인상을 주고받았을까.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시절을 소상하게 기억하는 동기생은 홍사덕(1943~2020) 전 국회부의장, 조태훈 건국대 명예교수(1943~2019) 등이다. 조태훈 교수는 2018년 주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고등학교 때 ‘장충동 건희집’을 방문한 이야기를 이렇게 썼다.

“(건희가) 마할리아 잭슨의 LP판을 틀어주면서 설명도 해줬다. 백인의 독무대였던 카네기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최초의 흑인 여가수였는데,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에서 노래로 차별의 벽을 뚫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심금을 울려줬다고 했다. 인종·신분·국경을 초월하게 하는 대단한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1960년대 초반, 고등학생 이건희가 이미 ‘문화의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로부터 27년. 1987년 삼성그룹 회장과 세계적 예술가의 만남! 백남준과 이건희, 두 사람은 10년 차이가 났지만, 말이 통했다. 이건희 회장은 백남준의 언어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만일 두 사람의 만남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놓았다면 정말 볼만 했으리라.

얼마전 미국의 유명 조각가 톰 삭스가 ‘TV부처’를 패러디한 작품 ‘TV요다’를 전시해 화제가 됐다. 초등학생까지 유튜브를 제작하는 세상이다. 유튜브는 1인TV다. 원조는 ‘TV부처’다.

2019년 영국 런던에서 백남준 미디어아트전이 열렸을 때 ‘TV부처’를 본 관람객들은 경탄했다. 50여년 전에 1인TV를 만들어낸 백남준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지난 7월20일은 백남준의 만 90번째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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