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딥 임팩트'와 헤퍼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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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딥 임팩트'와 헤퍼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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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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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꽃에서 꽃가루를 모으고 있는 꿀벌. 사진=위키피디아
미군 수송기에서 내려오는 황소와 젖소들. 수송기에 ‘헤퍼 프로젝트’라고 쓰인 게 보인다. 사진=헤퍼코리아
1954년 4월 미국 오클랜드에서 헤퍼인터내셔널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보낼 꿀벌 통(오른쪽 위 남성이 든 상자)과 염소, 토끼를 안고 수송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 작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사진=헤퍼코리아
1846년 미국 풍속화가 에드워드 힉스가 그린 ‘노아의 방주’. 사진=위키피디아
영화 ‘딥 임팩트’ 포스터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달로 가는 궤적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중이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이 1969년 7월. MZ세대의 부모세대가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경이로운 광경을 지켜본 지 53년 만이다.

누리호에 이어 다누리호까지. 지금 한국인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는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특별한 행사를 연다. 한화팀이 홈런을 치면 전광판 옆의 우주선 모형이 발사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기 엔진을 제작하는 전문 기업임을 강조하는 이벤트다.

우주 관련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제작된다. 1968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부터 2022년의 ‘문 폴(Moon Fall)’까지. ‘인터스텔라’도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영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역시 혜성 충돌이다. 최근의 ‘돈 룩 업’을 비롯해 혜성 충돌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된다. 혜성 충돌 영화 중에서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영화가 1998년의 ‘딥 임팩트’다.

‘딥 임팩트’에서 미국 대통령 톰 벡(모건 프리먼 분)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나와 성명을 발표한다.

“1년 전 천문학자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발견하고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우리는 비밀리에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를 혜성 폭파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실패할 경우를 또한 대비해왔다. 인간의 삶을 영속시켜 신세계를 건설할 사람이 필요하다. 혜성이 예상을 뒤엎고 지구와 충돌할 경우에 말이다. 미주리주 석회암 지하속에 거대한 요새를 만들어왔다. 거의 완공 단계에 있다. 수용 인원은 100만명이며 대기가 맑아지고 정화될 때까지 2년간 그곳에서 생존할 수 있다. 거대한 공동체인 이 요새는 ‘신노아의 방주’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씨앗과 식물과 동물을 비축했다. 8월10일 컴퓨터가 무작위로 80만 시민을 추첨해 이미 선발된 20만의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교사, 군인, 예술가와 합류한다. 다른 나라들도 자신의 실정에 맞는 형태로 유사한 요새를 만드는 중이다.”

‘딥 임팩트’를 처음 보았을 때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대목이다. 미주리호 석회암 지하속에 건설 중인 100만명 규모의 지하 요새. 인간의 삶을 영속시켜 신세계를 건설할 사람으로 선발된 20만명의 직업군.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교사, 군인, 예술가….

내가 밥벌이로 하는 생업은 과연 신세계 건설에 필요한 직업군에 들어가나. 지금 나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정녕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2021년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도 혜성 충돌을 다룬다. 그런데 전개 방식이 기존의 혜성 충돌 재난 영화 공식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대통령부터 누구 하나 지구 멸망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혜성 충돌론이 거짓말이라며 ‘돈 룩 업’ 정치 집회까지 연다. 타락한 백악관은 혜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미디어가 권력 편을 들자 여론도 돌아선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도 일종의 ‘노아의 방주’ 같은 우주선이 등장한다. 이 우주선에서는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인력이 아닌 특권층만이 비밀리에 탑승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급속 냉동된 상태로 2만2000년이 지난 후 어느 행성에 내린다. 천국처럼 보이는 곳에 내리자마자, 대통령은 처음 보는 조류에 물려 죽는다.

성경 창세기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 중에 노아가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착하게 살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도 늘어났다. 하나님은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괴로워하다가 땅 위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그러나 노아만은 살려주기로 한다.

“이제 큰 홍수가 나게 하여 땅 위에 사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릴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네 가족만 구해줄 것이니 내가 하라는대로 배를 만들어라. 배가 만들어지면 네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배에 타거라. 그리고 새들과 짐승들을 한 쌍씩 배에 태워라.”

노아는 배를 만들기 시작한다. 화창한 날에 무슨 홍수가 난다고 그러냐며 세상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아는 묵묵히 배를 만들고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짐승들을 태운다. 마지막으로 노아의 가족이 타자 배 문은 닫힌다.

그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장장 40일 동안 폭우가 쏟아졌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물에 잠겼다. 그러자 노아의 배가 물위로 떠올랐다. 지구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지 150일이 지나자 하나님은 비를 멈춘다. 땅이 다 마른 것을 확인한 뒤 노아는 새들과 짐승들을 배 밖으로 나가게 한다.

노아가 만든 배가 직사각형 상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노아의 방주(方舟)’라고 부른다. ‘노아의 방주’는 창세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도 ‘노아의 방주’가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는 성서고고학자들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했다. 이들은 ‘노아의 방주’ 스토리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실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많은 화가들이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또한 미국 켄터키주에는 ‘노아의 방주’ 테마파크까지 등장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 4만896명이 한반도에서 자유를 지키다 산화했다. 이중 미군 전사자가 3만6492명이다. 이 숫자는 지방 소도시 인구 규모다.

부산유엔공원에는 미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없다. 대신 3만6492명의 이름을 출신 주별로 분류해 새긴 ‘기억의 벽’을 세워놓았다. 이번에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에 세워진 ‘추모의 벽’에는 6·25전쟁 영웅들의 이름이 카투사까지 포함해 알파벳 순으로 새겨졌다.

워싱턴 D.C.에 ‘추모의 벽’이 세워진 지난 7월 중순 무렵 신문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미국 국제개발 비영리단체 ‘헤퍼’(HEIFER)가 6·25전쟁 직후부터 1976년까지 한국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젖소, 황소, 염소, 토끼 등 가축 3200마리와 꿀벌 150만마리 수송작전을 펼쳤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기사를 스크랩하고 밑줄을 쳤다.

1944년 설립된 헤퍼 인터내셔널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52년. 이들은 황폐해진 한국 땅에 황소, 젖소 등을 두고 가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미국으로 돌아가 전쟁으로 망가진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꿀벌 150만마리 수송 작전’이다. 이 꿀벌 수송작전 프로젝트가 ‘노아의 방주’다. 꿀벌은 200개의 벌통에 나눠 담고, 염소 75마리와 토끼 500마리가 1954년 미국 오클랜드를 출발해 한국땅에 내렸다.

내가 밑줄을 친 대목은 다음이다. ‘수송기 조종사는 꿀벌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인 비행기 고도 2.4~2.7km보다 절반 이하인 약 1.2km로 유지해 비행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한국이 뭐라고. 당시 미국인의 99퍼센트는 한국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극동의 신생국 한국이 공산주의 침략으로 존망의 위기에 놓이자 미국 청년들은 자유를 지키려 참전했다. 그리고 3만6492명이 피를 뿌렸다.

미국인의 휴머니즘은 비영리단체 구호사업으로 이어졌다. 헤퍼 인터내셔널이 한국의 산과 들에 두고 간 젖소, 황소, 염소가 황폐해진 축산업을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다. 늦둥이에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 젖이 부족해 간신히 분유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소고깃국은 명절 때나 한두 번 먹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나의 뼈와 살을 키운 건 미국산 가축이었고 꿀벌이었다.

행여나 꿀벌이 죽지 않을까, 비행고도까지 낮춰가며 조심조심 ‘노아의 방주’ 작전에 참여한 수송기 조종사와 헤퍼 인터내셔널 관계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의 휴머니즘에 자못 숙연해진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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