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과 인플레이션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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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과 인플레이션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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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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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올라가면서 채권과 예금으로 돈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회사채는 연 4% 이자를 주고 정기예금 금리도 연 3%를 넘었습니다. 금리가 0%대에서 갑자기 3%로 껑충 뛴 반면 주식이나 부동산의 수익은 좋지 않으니 돈이 이동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채권이나 예금이 고물가 시대에 적합한 자산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억원의 10년 만기 채권이 있는데 이자율이 연 3%, 물가상승률도 연 3%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이자율이 연 3%인 1년 정기예금을 10년 가입한 경우도 마찬가지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10년 뒤에 이 사람의 손에 들어 오는 실질적인 돈이 얼마나 될까요? 다시 말해 세금과 물가 상승을 감안한 최종 원금과 이자 수입(구매력으로 환산한 이자와 원금으로 부르겠습니다)은 얼마나 될까요?

이자는 매년 300만원 10년 동안 3000만원 받습니다. 여기에 이자소득세 15.4%가 부과되고 거기에다 물가가 오르면 돈의 실질적인 가치가 그만큼 떨어집니다. 그러면 첫째 해는 300만원 이자에 세금 15.4%를 빼고 거기에 3% 물가상승률을 할인하면 246만원이 됩니다. 동일하게 계산하면 두번째 해는 239만원이 됩니다. 이렇게 계산한 세후 실질적인 이자 금액을 10년간 더하면 2164만원이 됩니다. 구매력으로 환산한 이자 금액이 10년 동안 받는 명목 이자 3000만원에 많이 미치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0년 후에 원금을 1억원 찾게 되는데 10년 후에 물가 상승을 감안한 원금의 실질적인 가치는 7440만원이 됩니다. 이제 구매력으로 환산한 이자와 원금을 더하면 9,604만원이 됩니다. 명목상으로 10년 동안 내가 받은 원금과 이자는 1억 3천만원이지만 세금과 물가상승을 빼고 실질적으로 내가 받게 되는 돈은 9,604만원이 됩니다. 3,396만원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이자소득세는 정부의 수입으로 들어가지만 물가로 인한 구매력 하락은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요?

이것 역시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인 정부의 이득이 됩니다. 화폐는 국가가 발행하기에 국가는 부채를 갖고 화폐 보유자는 자산을 갖게 되는데, 인플레가 오면 부채의 실질적 부담이 줄어 들고 자산의 실질 가치가 하락합니다. 그러니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세금을 매기는 셈이 됩니다. 이를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눈치 채지 못하다 보니 조세저항이 가장 적은 게 인플레이션 세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질금리 등 이자의 실질 가치는 생각하지만, 원금의 실질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금의 실질 가치는 더 크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이자는 이자소득세와 인플레이션 세금 둘을 다 뗀 금액이 836만원(=3000만-2164만)인데 반해 원금은 인플레이션 세금만 뗀 것이 2560만원(=1억-7440만)이나 됩니다.

채권이나 예금 원금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습니다. 단기적으로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원금의 가치가 오르는 자본과의 본질적인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KOSPI 주식 지수는 배당을 제외한 가격의 변화를 나타내는데, 1980년 100에서 지금은 2,500으로 올랐습니다. 부동산 역시 임대료를 받고도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오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은 물가에 따라 가치가 오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단순히 이자 금액만을 볼 게 아니라 원금의 가치가 올라가는 지를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혈압과 물가를 침묵의 살인자라 부릅니다. 고혈압은 당장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지만 오랜 기간 후에는 혈관벽이 손상되고 혈관이 좁아지고 경화 되면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는 치명적이 됩니다.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동안 이자를 받는다고 해도 원금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돈의 실질 가치가 떨어져 당황하게 될지 모릅니다.

원금에 매겨지는 인플레이션 세금을 인지해야 합니다. 명목상 받는 이자만 보고 만족해 하는 것을 화폐환상(money illusion)이라 부릅니다. 화폐의 현란한 마술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시기에는 화폐가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겨서 보아야 합니다.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금리의 인상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자본도 정신을 차리고 물가 상승을 반영해나갈 것입니다. 장기채권이나 예금에는 이자소득세와 인플레이션稅가 부과되고, 특히 원금에는 인플레이션稅가 크게 부과된다는 것을 유념하고 장기적인 자산배분은 여전히 자본을 중심축에 두기를 바랍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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