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대만, 포르모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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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대만, 포르모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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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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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대만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다.

칠갑산 기슭의 충남 청양에서 우리 집은 경찰서, 교육청, 군청, 초등학교로 통하는 읍내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터미널, 문화원, 의원, 한의원, 양복점, 사진관·예식장, 금은방, 전파상, 철물점, 여관, 식당, 중국집 등이 모여 있었다.

청양읍의 상징인 500년 넘은 은행나무도 읍내리에 있었다. 읍내에서 가장 큰 중국집은 대만 사람이 주인이었다. 중국집은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는 고급식당이었다.

이 집에는 홀과 방이 대여섯 개 있었는데, 홀의 벽면에는 장개석(張介石·1887~1975)의 초상이 항상 걸려 있었다. 특별한 날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나는 장개석의 콧수염을 유심히 보곤 했다.

중국집에는 또래의 아이들이 두세 명이 있었는데, 모두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다 방학 때만 부모님 집에 내려와 지내곤 했다. 내가 동무들과 은행나무 아래서 놀 때 중국집 아이들은 몇 걸음 떨어져서 물끄러미 우리들이 딱지치기나 팽이치기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우리와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주변을 빙빙 돌았다. 장사가 잘되던 중국집은 구봉금광이 폐광되고 청양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하다가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대만 사람들은 그렇게 내 고향을 떠났다.

어린 시절 내게 대만은 곧 중국이었고, 중국은 곧 대만이었다. 당시 중공(PRC·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고향 고린컴에 세워진 핸드릭 하멜 동상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네덜란드의 식민지 대만

언제부턴가 대만이 또 다른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formosa’(포르모사). 학교에서 받은 세계부도에는 대만 옆에 괄호를 하고 분명 formosa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세계 지리부도 보는 걸 좋아했던 내게 포르모사가 그렇게 각인되었다. 나는 그때 포르모사에 내포된 뜻을 알지 못한 채 대만의 다른 이름 정도로만 알았다.

17세기 세계의 바다는 사실상 네덜란드의 독무대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뉴욕항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식민지를 건설해 ‘뉴 암스테르담’으로 명명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개척한 광대한 식민지. 자바섬 바따비아(현 자카르타)에는 동인도회사에서 파견한 총독이 주재하며 동양 무역을 총괄했다.

1653년 6월18일 바따비아항에서 스뻬르베르호가 포르모사를 향해 닻을 올렸다. 이 범선에는 포르모사로 부임하는 신임 총독 꼬르넬리스 께이사르 경을 포함한 선원 64명이 타고 있었다.

스뻬르베르호는 7월16일 포르모사 항구에 도착했다. 2주 뒤인 7월30일, 스뻬르베르호는 신임 총독의 명을 받아 야빤(일본)으로 출항했다. 목적지는 서남단 항구 낭가사께이(나가사키).

야빤으로 항해 도중 스뻬르베르호는 폭풍우를 만난다. 난폭한 폭풍우 속에서 배는 포르모사와 중국 사이에서 여러 날을 표류했다. 그러다 다시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에 배는 동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천신만고 끝에 8월15일 어떤 낯선 섬에 표착(漂着)한다.

64명 선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36명에 불과했다. 그 섬이 제주도다. 이때부터 하멜의 13년간 조선 억류가 시작된다. 왕과 고위층에 자국으로 돌아가게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된다.

반(半)노예 상태에서 살아남은 8명이 1666년 9월4일 극적으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하멜이 낭가사께이 합숙소에서 밀린 월급을 받으려 일지를 바탕으로 쓴 부재 증명서가 ‘하멜 보고서’다.



홍마오청 박물관 / 사진출처=홍마오청 박물관 홈페이지
옛 포르모사-루손 해협의 군도 지도. 포르모사라는 지명이 보인다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Formosa와 홍마오청

대만의 국호는 중화민국(ROC).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서양에 포르모사로 알려졌다. 대만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서양인은 포르투갈 상인이었다. 이들은 대만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Formosa’라고 불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만은 서양에서는 수백 년간 포르모사로 불렸다. 포르모사를 가장 먼저 식민지로 삼은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포르모사’는 1624년부터 1662년까지 38년간 지속된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 삼은 기간보다도 길다.

네덜란드와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스페인제국은 1626년 포르모사의 북부, 타이베이 일부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나 네덜란드에 패퇴한다.

이후 포르모사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지배에 놓였다. 그러니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포르모사에 신임 총독을 보낸 것은 38년의 식민통치 기간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왜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을까. 선원들도 휴식하고 보급품을 공급받는 중간 기착지가 필요했다. 바따비아와 낭가사께이 거리는 멀었고, 이미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필리핀은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은 명나라 후반부의 혼란기.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 포르모사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한 네덜란드는 큰 저항을 받지 않고 포르모사를 점령했다.

동인도회사 선박들은 바따비아에서 고무와 사탕수수를, 포르모사에서는 사슴 가죽을 배에 실었다. 동인도회사는 낭가사께이에 도착하면 고무·사탕수수·사슴가죽을 야빤의 차·비단과 현물 거래를 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사슴 가죽은 왜? 당시 일본은 에도 막부 시대. 사슴 가죽은 신축성이 뛰어나 사무라이들의 손목보호대로 애용했다.

포르모사를 가장 오래 식민 지배한 외국은 일본이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을 일본에 영구 할양했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간이다.

1949년 국공(國共)내전에서 중화민국의 장개석은 모택동의 공산군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천도한다. 1949년 12월이다. 이때 공산주의를 반대한 자유민주주의 지지자들이 장개석과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거 이주해왔다.

6·25전쟁이 터지자 장개석은 3개 사단 파병을 미국에 제안하기도 했다. 3차대전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파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많은 화교가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대만에는 포르모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방송국의 이름부터 박물관 이름까지. 대표적인 장소가 홍마오청(紅毛城)이다. 대만 사람들은 머리와 수염이 붉다는 뜻으로 네덜란드 사람을 홍마오(紅毛)라고 불렀다.

홍마오청은 원래 스페인이 세운 요새였으나 네덜란드가 차지한 이후 동인도회사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하멜도 홍마오청에서 머물렀다. 이후 홍마오청은 청나라, 일본 등 주인이 바뀌는 역사의 곡절을 겪는다.

△한국의 생명선, 바시 해협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전후해 양안(兩岸) 긴장이 한때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가 가중될수록 주목받는 지역이 바시(Bashi) 해협이다.

바시해협은 대만 남단에서 필리핀 루손섬 사이의 바다. 태평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바닷길이다. 중동에서 기름을 싣고 한국과 대만으로 향하는 유조선들이 모두 바시해협을 지난다. 이 해협은 한국과 일본의 생명선이다. 그런데 중국이 바시 해협 봉쇄 훈련을 한 것이다.

대만은 ‘태평양 자유민주주의벨트’에서 한국·일본과 운명적으로 엮여있다. 최근 또다시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공급망 연합, ‘칩4 동맹’에서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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