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절박성 요실금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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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절박성 요실금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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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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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엄마를 모시고 병원 투어에 나섰다. 도시는 여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서둘러 가을을 맞고 있었다. 엄마는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20미터를 이동하는 데에 다리의 힘을 거의 소진하고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내 팔을 잡았다.

노인은 병원에 가면 노인만 본다. 그들의 오래된 육체는 살아온 만큼씩 닳아있다. 엄마가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유심히 보고 있는 걸 봤지만 알은 체 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지팡이를 사드리는 건 이거 짚고 요단강 건너가시라는 뜻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료를 마치고 1층 약국에서 약을 받아올 동안 엄마는 건물의 외벽에 기대어 서계셨다. 진분홍 블라우스에 연분홍 바지차림으로 두 손을 모으고 서있는 할머니는 딸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느라 조금 전 보고 온 소변이 다시 마려운 것 같은, 병원에서 절박성 요실금 진단을 받은 내 엄마였다. 순간 알 수 없는 슬픔이 온 몸을 휘돌아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제 엄마의 포플린 치마폭에 안기거나 아무 때고 아무 맥락 없이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앙탈부리거나 교만과 게으름 같은 내 악습이 나를 오냐오냐 키운 엄마 탓이라고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을. 엄마의 희생과 보살핌에 머물러 한 뼘도 성장하지 못한 철부지로서의 나는 이제 엄마에게 남겨진 시간의 그래프를 시시각각 목격해야 한다. 목격 말고는 할 게 없다는 것은 명백한 형벌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엄마는 소각장 뒤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오지 않았다. 양버즘나무 그림자가 운동장을 먹어가고 경비아저씨가 돌보던 토끼들도 사육장으로 들어갔다. 화단에서 작대기를 주워 운동장 구석에 원을 그리면서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사위어가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여름이 시들고 가을이 풋내 나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한낮은 여름 같았다. 엄마의 달팽이관이자 지팡이이자 물음표로 두 곳의 병원 진료를 마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이 길로 너랑 서울에 가고 싶다.’

딸이 운전하는 차에 오르니 요의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실내는 시원한데다 딸이 야무지게 의사의 말을 들어놓은 터다. 엄마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일까. 서글퍼진 것일까. 나는 엄마를 본가에 모셔다 드리고 서울로 올라와야할 터였다. 딸도 나이를 먹으니 속절없이 눈치만 빨라져선 엄마의 속마음을 금세 알아챈다. 당신 때문에 바쁜 시간을 내느라 고맙고 미안하다는 엄마의 속말에 선뜻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일단 웃고, 천천히 대답했다. ‘가자. 가면 되지.’

중년이 되고 보니 부모의 부재를 감당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엄마의 부재를 떠올릴 때마다 일곱 살짜리 울보 여자아이가 슬프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둘은 그때나 지금이나 속수무책의 시간 속에 있는 채다.

아이인 채로 어른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찌를 것처럼 쏟아낸다고 해서 여름 해가 가을 서리에 자리를 내놓지 않을 수 없듯 닥쳐올 일을 피할 수도 없다. 쾌활함과 특유의 기지를 놓아가고 있는 엄마를 대하자니 작대기 하나 주워와 텅 빈 운동장에 선 늦은 오후가 떠오른다. 저 멀리 아득히 길고 공허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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