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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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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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최근에 많은 지자체가 공을 들이는 사업 중의 하나로 문화도시 사업이 있다. 도시재생사업처럼 눈에 보이는 시설을 세우거나 하는 사업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시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바는 약한 것 같다. 하지만 지방 위기가 현실화하는 이 시점에 문화도시 사업은 쓸모가 많고도 요긴한 사업이다. 특히 물리적인 쇠락에 대처하느라 도시 문화는 돌볼 여력조차 없던 지방 도시들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기회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그릇을 만들고, 문화도시 사업으로는 그 위에 근사한 음식을 올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조화일 것이다.

물론,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공모사업이다. 문화체육부가 주관하는 심사에 선정된 도시는 5년간 200억까지 지원받아 지역의 문화적 활력을 북돋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작지 않은 지원이다 보니 지자체 간 경쟁은 자못 치열하다. 선정된다 해도 1년간은 자체 예산으로 ‘예비 문화도시’ 단계를 진행하며 성과를 보여주어야 비로소 본 사업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 도시마다 사업을 위한 인력 확보, 콘텐츠 구상에 애가 타는 지경이다. 3차에 걸쳐 선정이 이루어졌지만, 문화도시로 확정된 도시는 200개가 넘는 지자체 중 아직 18개에 불과하다. 경북에서는 포항이 1차 문화도시부터 선정되어 앞서 달려가고 있고, 뒤를 이어 칠곡, 안동, 경주 등도 선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

포항에서 진행된 3년간의 문화도시 사업은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본보기도 없던 첫걸음에서 시작해 많은 성과를 일구어 가고 있다. 하지만 오직 ‘문화’라는 취지로 지역에 주어진 초유의 기회, 문화도시 사업의 성격을 인식하고 동참하는 지역민은 기대만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지역 문화라 하면 으레 문화시설을 짓고 행사를 열고 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문화도시 사업의 목표는 보이는 시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민들의 문화 역량을 높이는 데 있다. 그럴듯한 공연장, 전시관을 갖춘 도시는 이제 흔한 편이다. 하지만 지역에 문화적인 내용을 채우고 향기를 발하기까지 하는 도시는 많지 않다. 그 차이는 결국 시민들의 삶 속에서 문화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문화도시 사업은 시민들의 생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문화의 작은 꽃들을 지역의 생활공간 곳곳에서부터 피워가는 것이다. 큰 건물과 대규모 축제로 ‘대박’을 노리는 접근은 그래서 문화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문화도시는 ‘구경용’이 아니라 ‘참여용’이다. 우리 각자가 알고 보면 주인공이었고, 우리 삶터가 무대였음을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도시인 것이다.

때로 문화도시 사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주로 지역 문화를 이끄는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들이 가지는 오해이다. 따지고 보면, 문화도시는 5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진행되는 공공사업일 뿐이다. 지역 문화를 그 뿌리부터 열매까지 다룰 수 있는 만능정책이 될 리 없거니와, 그런 시도를 한다 해도 그 자체가 문화적으로 무모한 접근일 뿐이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문화를 일구어 가는 긴 여정에서 잠시 활용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지역 문화의 기승전결을 모두 여기서 찾으려 한다면 문화도시 사업을 말만 많은 공허한 잔치로 전락시킬 수 있다.

어쨌든, 포항은 사실 기대를 뛰어넘는 선전을 보여주고 있다. 등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 자산을 창고 가득히 쌓아놓은 것 같은 도시들 틈에서도 전체 2위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제 중견 문화도시로 인식되면서 다른 도시들의 모본이 되고 있다. 포항은 특히 ‘문화 안전망’이라는 모토로 많은 공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숙명처럼 제철산업 도시로 성장해 오면서, 그간 포항으로서는 문화도시의 길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전에 없던 지진피해를 겪으며 지역민들의 문화정서는 기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점에 다시 차분히 지역을 돌아보면서, 공백으로 두어왔던 지역민들의 문화정서를 꼼꼼히 챙기겠다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안전망의 개념이다.

문화 혜택의 경계선 밖에 있는 지역민들을 찾아내 ‘문화 돌봄’을 나누어주기 위한 활동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문화검침원, 모니터링 등 다양한 역할로 참여하고 있고, 문화재단 직원들은 한 해에 수만 킬로 이상의 이동 거리를 기록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다니며 안전망을 펼쳐가고 있다. 문화도시라고 하니 무대 위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활동들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무대 뒤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찾아서 살펴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말은 그리 문화적인 표현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지금 찾아온 문화도시는 지역으로서는 꼭 잡아서 제대로 활용해야 할 중요한 기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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