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3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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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3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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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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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칼럼

올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기대 평균수명은 83.5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수명도 남녀 합산하여 평균을 내면 대략 83세에 근접한다.

전문 의료인들은 의학의 발달과 복지향상으로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195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불과 47세였다는 점을 참작하면 비약적으로 수명이 늘어난 셈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자 언제부턴가 “제 2막 인생”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2막 인생은 그 시기를 딱 부러지게 정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직장에서 은퇴 이후 시작되는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영국의 인구학자 피터 라슬렛은 인생을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잣대로 두 동강 내어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짓고 ‘3기 인생’을 제안했다. 그는 제1기는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25년이고, 제2기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시기이며,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은퇴 이후를 제3기의 삶이라고 정의했다.

피터 라슬렛의 이론에 따라 인생에서 제3기(3막)의 기간은 대략 얼마나 되는지 추정해보자.

한 취업 플랫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나이는 평균 51.7세이다. 법정 정년 60세보다 8년 이상 이른 시기이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현재의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은퇴 이후에 대략 25~28년을 더 산다는 것이다.

인생 전체로 볼 때 거의 1/3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긴 세월을 무얼 하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자기연민에 젖은 채 무기력하게 세월을 보낼 것인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인가. 그 누구일지라도 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상은 인생 후반부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사람들은 인생 3막에 대비하여 안정적이고,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외적 요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년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한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었기에 나약해졌다 생각 속에 편안하게만 살면 된다.라는 인식은 삶을 건조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무리 여유롭고 풍요로워도 추구하는 게 없고,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면 삶은 생동감을 잃고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 되고 만다.

삶으로 체득한 경험과 그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에 갇혀 유연성을 잃고 딱딱해져 버린 정신세계, 이제는 모를 것도 없고 더 알 필요도 없다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관념, 만사에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감정, 더 이상 신비로운 것도 없고 설레지도 않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시큰둥한 시간들, 지금은 늦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 남은 세월은 상실과 쇠퇴뿐이고 가슴 깊은 곳에는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만 가득하다. 깊은 밤이면 눈물만 나는 나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꿈꾸고 소망하며, 다시 한번 노래하고, 작은 일에 감동하고, 다시 한번 삶에 대한 경이와 기쁨으로 전율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그 시작은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아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일이다.

사고에 유연성을 가지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조금씩 어우러지고, 아직도 세상엔 배울 것이 많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며, 소소한 일상일지라도 의미를 부여해보라.

그러할 때 고목 같은 영혼에 다시 싹이 돋고 삶은 활기 있게 회복될 수 있다. 젊어서 아름다움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늙어서 아름다움은 자신이 빚어낸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하지 않던가.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남은 제3막의 긴 세월은 불구의 시간이 되고 만다. 노년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바꾸면 갈잎으로 바랜 것 같은 남은 세월을 곱게 물든 단풍으로 바꿀 수 있다. 하여, 당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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