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과 포항
  • 이진수기자
집단지성과 포항
  • 이진수기자
  • 승인 2022.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집단지성으로 산업혁명
포스코 직원들 기지로 태풍
피해 복구 앞당겨 포항 산학연
도시이나 다양한 구성체 모임 없어
이제라도 포항시 주도의 집단지성
갖춰 지속가능한 발전 추구해야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영국의 산업혁명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계몽주의다. 즉 집단지성이 기술진보의 핵심을 이룬 것이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영국은 자발적 연구모임과 공개 강연이 많았다.

다양한 회원들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발명과 혁신을 격려해 누구나 자유롭게 혁신에 몰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 등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산학협력형 사회, 즉 혁신 친화적인 사회가 영국이 기술을 선도하게 된 핵심 열쇠다.

반면 프랑스는 계몽주의 사상 발전에 있어서는 유럽을 선도했지만, 계몽주의가 산업화 현장에 이어질 수 있도록 유연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뒤쳐졌다.

1989년 알레스카에서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가 있었다. 5300갤런의 원유를 싣고 가던 유조선 엑슨발데스호가 좌초돼 원유가 바다에 유출됐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제에 동원됐으며 1년 간 20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사고를 수습하려 했으나 해결되지 않아 17년 간 지속됐다.

국제기름유출연구소는 이노센티브라는 회사에 해결을 의뢰했다. 이노센티브는 집단지성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회사는 원유유출 사고 문제를 공유했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후 단 3개월만에 문제가 해결됐다.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쳤다.

엄청난 폭우로 포항은 한순간에 물바다가 됐으며, 포스코 포항제철소 또한 침수돼 3개 고로(용광로) 모두 휴풍(쇳물 생산 일시 중단)과 함께 전공정의 가동이 중단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포스코는 정상 조업을 위해 인력과 설비를 총동원해 피해 복구에 나섰지만 침수와 정전으로 난항을 겪었다.

정전으로 배수용 수중 펌프를 가동할 수 없게 되자 한 직원이 자신의 전기차 배터리를 연결해 임시방편으로 공장에 전기를 공급해 어두운 작업환경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해 수중 펌프를 가동하고, 소형 펌프에 전원을 연결해 전기가 끊긴 상황 속에서도 배수 작업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수해로 전기, 전자 제어장치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전기, 전자설비의 핵심 부품인 제어 기판은 물에 닿은 채로 방치되면 부식이 돼 복구가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속히 세척한 후 건조해야 하나 직원들이 수많은 제어 장치를 수작업으로 말리기는 역부족이었다.

포항제철소 협력사의 한 직원이 고추 건조기를 활용해 제어용 기판을 건조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고추 건조기 활용으로 한 번에 대량으로 제어용 기판 건조가 가능해 설비 건조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일상의 전기차 배터리와 고추 건조기가 포스코 태풍 피해 복구에 톡톡히 역할을 한 것이다. 위기 극복에서 나온 이색적인 아이디어다.

이 같은 사례들은 집단지성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집단적 능력이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글로벌 철강사와 함께 이차전지, 바이오, 로봇 등 첨단산업이 있으며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이 있는 산학연 도시다.

타 지역에서 보기 힘든 포항만의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 포항은 집단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각 기관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포항시가 집단지성의 구심점이 돼야 하나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과 달리 포항은 과학자와 기업인, 기술자는 물론이고 학자, 행정가, 건축가, 도시재생 전문가,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함께 자유롭게 대화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나 모임이 없다.

포항시가 ‘행정은 행정이다’는 스스로의 테두리 안에 갇혀 포항의 장점에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현안이 있을 때 포항시가 몇 몇 관계자들을 불러 격식을 갖춘 상태에서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대화로는 지역 발전은 물론 현안 해결에도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하나의 발명이 되고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들의 소통과 연구개발이 선행돼야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김재우 전북대 교수는 “집단지성은 여러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가진다”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집단지성은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2017년 11월 지진에 이어 이번 태풍까지 겹치자 자연재해에 안전한 도시를 조성하겠다고 거듭 밝혔으나, 아쉽게도 지자체의 주도이지 산학연관의 집단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산업혁명을 일군 영국이 강대국이 되고, 세계가 기술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원천은 집단지성의 힘으로, 오늘날 포항과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이제라도 기존 산학연에 포항시가 구심점이 돼 집단지성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