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함께 아파할 때입니다
  • 김희동기자
지금은 함께 아파할 때입니다
  • 김희동기자
  • 승인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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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 골목길, 차가운 바닥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꽃다발과 짧은 삶을 살다간 이들을 위로하는 메모지가 쌓여갑니다. 지하철 6호선 1번 출구 앞도 하얀 국화꽃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 발길이 종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김지하 시인은 ‘사람 한평생 사는 것, 종이우산 한 번 접었다 펴는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2022년 시월이 그렇게 갔습니다.

어느 남성 듀오의 노래처럼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할까’

시월이면 종일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입니다. 정말,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내일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또 그 다음날은…

지난 10월 30일 선잠에서 깬 휴일 아침. 아들이 지난밤 늦게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뉴스 화면 아래 고정된 붉은 바탕에 하얀 고딕체가 두렵고 떨리게 했습니다. 쇠기둥에 부딪힌 듯 머리가 징징 울리며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아이의 SNS프로필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지난해 핼러윈을 서울 이태원에서 보내고 키다리 피에로 옆에서 하얀 마스크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났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즐겨찾기에서 딸아이 이름을 꾹 눌렀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반복하기를 다섯 번, 가족 단톡방에 아들에게 전화하라고 하고 새벽 산행을 간 남편에게 전화하는데 한동안 떨리지 않던 눈가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전화를 받는 남편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안 받아. 작년에 갔단 말야. 빨리 연락해봐.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어”라며 평소 마음에 담아 두었던 험한 말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정신이 나가나 싶을 정도로 진정이 되지 않고 심장이 벌렁거렸습니다. 일어나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 무겁게 흘러갔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있던 막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언니 친구들한테 전화해보라며 휴대폰에서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라 섣불리 전화를 못하고 조심스럽게 안부를 겸한 문자를 보냈습니다. 남편이 딸과 통화가 됐는지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 안갔다고 집에 있다고 어제 사진도 보냈잖아” 잠이 덜깬 딸아이의 짜증 섞인 말에 안심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종일 이태원 현장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은 갈라졌고 애가 끊어질 듯 아픔을 참으며 휘청이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은 어떤 슬픔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가족 단톡방에 화면을 캡쳐한 글을 올렸습니다. 첫째의 1년 선배가 이태원 그 좁은 골목에 있었고, 막내와 지난 추석 같이 외국여행을 갔던 후배의 누나가 그 골목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내리막길 사람들 틈에서 휩쓸리며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또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형제, 가족, 친구의 얼굴이 머리를 지나갔겠지요. ‘사랑한다’는 말도 한 줄의 문자도 남기지 못하고 아까운 청춘의 꽃 156송이가 떨어졌습니다.

29일 그날 그 시간 즈음 배우 김혜수가 열연하고 있는 퓨전 사극 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자식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달려가던 어미의 달음박질치던 그 뒷 모습이 선합니다. 병으로 죽음을 앞둔 세자가 중전인 어머니에게 아픈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누워 “어마마마 약속해주십시오 무너지지 않겠다고” “원손과 아우들을 지켜주십시오”라고 ….

이번 이태원 참사를 당한 어머니들도 무너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족이 아직 더 많이 남아 있음을 잊지 말고 견뎌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무너지면 안됩니다. 그날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심폐소생술에 나섰고 인근 상인들이 구조인력을 도와 길을 해쳐나갔습니다. 피맺힌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는 이태원 참사로 일찍 가버린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희동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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